“무슨 여자가 그래?”
“여자는 얌전 해야지!”
난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언행의 규제 속에 여자로 길들여져 살아왔다. 그래도, 비오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다니며 ‘세상 남자 우산은 모두 다 내 우산’이라는 착각 속에 무한한 가능성을 키우며, 인식욕을 불태우며 오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늦은 귀가에 대문을 안 열어 주시던 아버지께 “아버지! 무슨 일이 꼭 낮에만 일어나는 줄 아세요?…” 당찬 나의 말대답에 어이없이 일그러진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며 뒤돌아 슬며시 웃곤 했었다. 막연한 이런 불안감은 막을 내리고 다시 닻을 올린 결혼생활이, 안정감보다는 인습의 끈으로 얽혀서 질식할 만큼 조여오는데는 현실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자연 속에 말없이 이뤄지는, 대개는 불륜이거나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 영화의 사랑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추하다고 보기엔 너무나 아름다워 갈등 속에서도 난 늘 빠져들었다. 인간의 진솔한 사랑은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인간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만든 윤리의 잣대로 재어 난, 남편 이외엔 사랑할 수도 없는 한계성을 가진 한 남자의 아내였음을 뼈저리게 자각한다.
사실 외로움, 사랑 따위의 감정은 먹고 입고 잠자는 기본욕구 충족 없이는 사치한 감정놀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정서적 사치도 ‘에릭 프롬’은 소유욕이라 했다. 이런 소유욕조차 벗어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나에게 화를 내며, 내면의 나의 솔직한 감정을 마주할 때마다 사실 겁이 난다. 늘 부대끼는 가슴 밑에 영원히 채우지 못할 물독으로 주체할 수 없는 갈증을 느낄때 마다 허기지고 황폐해진 주부라는 현실의 나를 본다.
수없이 빨아 개던 기저귀의 행렬 속에서도 어떤 틀에 매이길 싫어하고, 같은 일의 반복에 염증을 느껴도 난 강인하게 살림을 해야 하는 아이들 엄마다. 받는 데만 익숙한 자기중심적인 나, 잘 아물지 않은 자존심의 상처는 무슨 보물처럼 끌어안고, 혼자만 되새기는 나약하고 편협한 내면의 나를 볼 때 항상 외롭다.
이런 외로움, 허기, 갈증을 느끼면서도 결혼생활 10년 짐의 무게에 눌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엄마·아내·주부라는 삶으로 안주하려는 36세의 나는 분노한다. 어릴 때부터 가끔씩 고개 들던, 여자여서 불합리한 편견 속에 억울했던 기억들조차, 이젠 적당히 길들여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중년의 아줌마이지만, 여자인 나는, 나를 창조하는 한 인간이 되어 홀로 서고 싶다.
지금까지 나의 삶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진 삶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의식적으로 체계적으로 살고 싶다. 내 삶은 아이들·남편…그 누가 혼자 떠나야할 긴 여행이고 내가 가꾸어야 할 경작되지 않은 내 영혼의 빈뜰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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