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행복한가?”라는 질문에는 잠시 당황한다. 제법 대담한 대답이라 해도 ‘그런대로’라든지 ‘그럭저럭’같은 말로 모호하게 얼버무리기 일쑤다. 소박하고 실팍한 생각의 사람도, 행복이라는 표현 앞에서는 망설이게 된다. 물론 이런 태도는 겸허함일 수도 있고 더 훌륭한 상태를 향한 끝없는 희망의 표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이런 불분명한 의식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행복’이라는 종목이 따로나 있는 듯이 보편타당한 어떤 형태를 갖춰야 하고 만인공통으로 인정해주는 내용을 조목조목 구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우리를 자신없게 하는 것 같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한 빛깔이라야 하고 보통이 아닌 특별한 것, 평범이 아닌 비범만이 내놓고 펴보일 수 있는 ‘행복’이라는 편견으로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내 기억 속에 깊게 새겨진 행복 하나는 도시 고속도로 매표원 아저씨가 새 안경을 쓰게된 일이다. 작년 중반까지 나는 시간제로 하는 일 때문에 매일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다녔는데 그때 이 초로의 매표원 아저씨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의 때문이 아니라 4백원을 받고도 2백원짜리 통행표를 내준 그분의 착오가 고의이지 아닌지를 알아내기 위해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아저씨가 표 내주는 동작이 유난히 더디다는 것에 주의하게 됐고 곧이어 그분의 안경알에 흠이 너무 많아 뿌옇다는 것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그 희뿌연 안경알을 통해 통행권 색깔을 구별하는 게 어렵겠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 나는 이 아저씨가 지키는 톨게이트를 택하기 위해 애를 썼고 그러다가 운 좋게 그 아저씨를 만나는 날은 추파를 던지듯 진하게(?) 웃기를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한가한 시간에 그분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과연 나를 기억할지 자신은 없었지만, 고개를 쑥 내밀고 큰 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안경알이 왜 그래요?” “너무 오래 써서 그렇지요” 주고받은 말이라고는 이 두 마디지만 기쁨은 대단했다. 그래서 짝사랑에 서광이라도 비친양 동료들한테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안경을 어떻게 바꾸게 할 건지가 다음 숙제로 남았지만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아저씨가 반짝반짝 빛나는 말간 새 안경을 끼고 웃어주는 게 아닌가!
내 시각까지 환하게 열어준 것 같던 이 초로의 매표원 아저씨 새 안경은 내 ‘행복’의 명세서에 이렇게 올랐다. 새삼 떠오르는 검은 테의 그 새 안경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밝게 한다.
나는 니 비망록 앞자락에 이렇게 써놓고 있다. ‘행복하다고 말하라 나 때문에 가족 때문에’ 행복은 결코 추상명사가 아니다. 우리 모두 두루 갖고 있는 보통명사요, 우리 각자의 것으로 특별한 모습을 갖춘 고유명사이기도 한다.
하느님 모습 그대로 태어나서 계절을 미리 알고 오롯이 고개 드는 찬연한 자연 속에 어우러져 사는 우리! 이번 봄에는 세상만사행복의 눈으로 한번 쳐다보면 어떨까? 그래서 모두들 자신 있게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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