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십자가 앞에 양쪽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께 불리움 받았음을 뜨겁게 느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순간을 마련해 놓으시고 아득히 먼 옛날부터 내 등에 바늘을 꽂아 지구 끝 벼랑에 서있는 나를 한뜸 당겨 주셨음을 느꼈습니다. 내 나름대로는 충실한 신자요 이웃을 사랑하며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주님 앞에 얼마나 교만했는지 그때서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3박4일의 꾸르실료는 주님의 현존을 체험케 하였습니다.
나는 어릴 때 유아영세를 받았습니다. 교리반 수녀님이나 어머니께로부터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느님이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 손에 이끌려 미사참례를 따라 하였습니다. 기도가 하느님의 양식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이 배고프면 어쩌나 걱정되어 아침 점심 저녁기도를 순종하며 드렸습니다. 그렇지만「하느님이 정말 계실까. 계신다면 언제쯤 만나게 될까」하는 의구심은 항상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의 유년기 시절의 신앙생활 모습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십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 주님은 나를 시험하셨습니다. 한 사람을 보내주시면서 주님을 부정하는 이 남성을 택하든지 아니면 주님 당신을 택하라 하셨습니다. 우선, 주님보다는 내 눈앞에 보이는 인간의 사랑이 더 가깝고 뜨거웠으며 의지하고 싶고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주님을 배반하려니 부모님을 거역하는 듯한 심정이 되어 차마 그렇게 할수가 없었습니다.
양갈래 길에 서게 된 나는 그때부터 남모르는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몸은 인간을 따르려하고 영혼은 주님을 따르려하니 영육이 두개로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었습니다.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방황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그런 가운데 차츰 차츰 주님으로 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멀어지는 만큼 주님을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마치 헤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이 빠지는 하나의 늪과도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동안 내적으로 냉담하였습니다. 미사참례를 하기는 해도 어머니 꾸중이 두려워서 하는 겉치레였습니다. 나의 신심은 이중적 성격을 띠게 됐습니다. 열심한 신자들 보면 왜 그리 못마땅한지 뒤에서 한마디씩 비방을 해야만 속이 후련하였습니다. 고백성사와 영성체도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삐뚤어지고 단단히 굳어져 가던 나의 병든 양심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때때로 마음에 임하셔서 고백성사와 영성체를 하도록 양심을 데워 주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돌같은 심장을 녹여준 한 방울의 생명수 아니었던가 생각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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