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나의 몸은 원인 모르게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뚜렷한 병명도 없이 매번 신경성이라고만 하였습니다. 감기한번 걸리지 않았던 내가 잦은 감기를 앓게 되었고 급성축농증에 걸려 수술을 받고 나서 부터는 그 후유증으로 인한 여러 가지 치료약을 복용하게 되었으며 치료약을 여러 가지 복용하다 보니 부작용이 생겨서 또 온갖 질병들이 새롭게 발병되어 언제나 심신이 나른한, 기운 없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항상 건강하게 자신감 넘치던 내가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임종을 맞는 이들의 고통과 희망을 상실한 가족들의 눈동자며 그 의탁하려는 마음까지 헤아려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팔팔했던 성격이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주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남의 고통을 헤아려 이해할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긴 건 오직 나 스스로 닦은 덕성 때문이라는 교만심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심한 영혼의 갈증을 느꼈습니다. 나는 끝없는 바다를 갈망하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제단위에 서리는 따스한 불빛이 그리워졌습니다.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어항속의 금붕어처럼 나를 구속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싫어진 건 아니지만, 나는 단지 어항 속을 떠나 소금기 있는 푸른 바닷물을 마시며 건강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주님을 부정하는 그는 나의 이 갈등과 아픔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알 수 없지만 떠나갔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오랜 방황에서 벗어나 내 마음에 지푸라기만큼 남은 주님의 옷자락을 잡고 그 유혹의 늪강을 건넜습니다.
내가 다시 주님 안에 살기로 결심했을 때에는 이십대를 지난 나이였습니다. 어리게만 보아왔던 조카들이나 후배들의 키가 어느새 내 어깨를 넘실거렸으며 언재 내 곁을 스쳐갔는지 모든 지식과 활동이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불현듯 오늘 갑자기 내가 작고 뒤져있음을 깨닫게 된 뜻은 어디 있을까….
고향을 떠나 먼 이국땅을 헤매어 온 방랑자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고 한편으론 안착된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을 내리고 내가 쉴 집을 수리하고 가꾸듯이 나의 모든 부족함과 비뚤어진 신앙을 새롭게 바로 잡을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때부터는 적어도 주일미사는 꼭 참례하였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많은 독서를 하면서 길가에 엎드린 걸인의 구걸 냄비에 동전 한닢 넣을 수 있는 작은 아량도 베풀면서 ‘이 정도면 이제 나도 착실한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라고 자만심에 도취되어 만족하는 철부지 인간이 되어갔습니다.
그 무렵 여성 제59차 꾸르실료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피정을 해보지 않았던 나는 꾸르실료가 무엇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다만 거기는 특별한 신자만 참석할 수 있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매님도 한번 다녀 오시지요”하는 한 꾸르실리스따의 권유에 왠지 주님께서 그분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망설이지 않고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사순절 첫 주간에 나는 혼자 먼 순례의 길을 떠나는 기분으로 차분한 마음이 되어 그 모든 일정에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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