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주일이 되니 며칠 전 국민학교 2학년인 큰애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학교에 다녀온 두 아이와 점심상을 앞에 놓고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큰아이가 “엄마, 내가 커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런 생각없이 밥을 먹고 있던 나에게 이 질문은 어려운 시험문제인 것인 양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앞날은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 엄마가 이런 사람 돼라, 아빠가 저런 사람 되길 원한다고 네가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니?”라고 대답했더니 “사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알아오라고 하셨어. 엄마가 바라는 것 한 가지만 얘기해 주세요”라고 한다.
그래서 “그럼, 뭐가 좋을까? 엄마는 네가 성당의 신부님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했더니 아이는 의외라는 듯 “그건 안 돼”라고 했다.
“왜 안 되니? 신부님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데 너도 알잖니. 우리 성당 신부님께서는 외국에 나가셔서 공부도 많이 하고 오셨고, 좋은 분이시잖니?”했더니 “그게 아니고…. 난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아야 되고 밥도 혼자 해먹고 모두 나 혼자 해야 되잖아”하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백지 같은 상태일테고….
혼자 고심 끝에 “큰집 형님도 지금 신학교에서 신부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고, 네가 혼자가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야. 신부님은 결혼은 하지 않지만 부모 형제와 이별하지 않는단다”면서 애써 이해시키려 했지만 좋은 것도 많은데 엄마는 왜 하필 외로운 신부님이 되길 원하느냐고 투정이다.
반 친구들은 모두들 “가수·탤런트·대통령·군인·경찰…”이라고 하는데 자기 혼자 “신부님”하면 모두들 웃을 거란다.
“그래, 이 엄마가 바란다고 네가 꼭 신부님이 될 수는 없겠지. 그건 엄마의 꿈일 분이야. 넌 부담 갖지 말고 차차 커 가면서 생각해 보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결정해 주실테니까”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난 슈퍼마켓 사장이 될 거야. 아니 경찰이 될까?”하며 명랑한 아이로 돌아왔다.
요사이 자녀가 하나 둘뿐인 가정이 많다. 그냥 귀엽기만 해서 과잉보호로 키운 자식들이 ‘홀로서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두려움마저 앞서는 게 나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다. 또한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게다. 그렇지만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그런데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는 신자들 중에도 내 자식만은 성직자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자식에게 성소의 길을 가도록 권하지는 못해도 자식이 가고자 하는 길을 막는 것은 부모의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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