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어머님은 나를 붙들고 매일같이 “네가 했지! 네가 일렀지!”하시며 한없이 우셨다. 내가 큰 형님을 죽였다는 것이다. 4살인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랐었다.
6·25가 나던 해 큰 형님은 형무소에 취직을 하여 간수로서 일을 보고 있었다. 더구나 맏이로서 결혼도 하고 한창 활기찬 집안이 되고 있었다.
6·25가 발생하자 가족들은 신자들과 함께 성당지하실에 숨었다. 공산군들은 온마을을 뒤집고 다니며 교우청년, 공무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도 예외 없이 내무서원이 찾아와 온갖 협박으로 교우들의 소재를 족쳐 댔지만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었다.
나는 성당마당에서 굶주림도 잊은 채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무서원이 나에게 건빵 몇 개를 주면서 “신자들과 남자들이 어디 숨었니”하고 물었다. 나는 건빵을 받아들고 “저기 굴속에 있어요”하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신자들과 형님은 끌려가서 총살을 당하였다.
부모님의 울부짖음과 유목자를 부둥켜안고 슬픔에 잠긴 홀로된 형수님의 가련한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 후 우리 가족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미사로서 위안을 삼았다.
내 잘못으로(?) 미망인이 된 형수님은 지금도 칠순의 고령이지만 거의 매일 미사 참례하는 재미로 산단다. 유복자인 내 조카는 마흔이 넘어 어머님을 모시고 있다. 내가 신부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아가신 형님을 위하여 부모님과 형수님께 속죄를 하기 위하여….
“내 탓이오. 내 어린 탓이로소이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광주진 월동본당 박희동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수원교구 남양본당주임 이상각 신부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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