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찌르는 악취를 느끼며 공장안으로 들어서자 ‘음습’하다는 표현 그대로 공장내부는 30여m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고 공장바닥에는 습도를 맞추기 위해 뿌려놓은 물이 흥건히 괴어있었다. 가동 중인 방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로 금세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방사기에는 이황화탄소가스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유리문이 설치돼 있으나 제대로 닫히지 않았고 기계 밑으로 연결된 배기관이 낡아 배기과정에서 가스 상당분이 다시 공장안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방사기를 받치고 있는 콘크리트가 마치 죽처럼 흐물흐물 녹아가고 있는 모습은 이황화탄소가 얼마나 독한 가스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상은 국내 모일간지 기자가 전한 ‘죽음의 독가스’ 이황화탄소를 내뿜어 숱한 직업병 환자를 양산,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원진레이온공장 내부의 모습이다.
또한 원진레이온 재해근로자들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는 최근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그들의 정신·육체적 고통은 한마디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같다.
신체마비와 언어장애, 강제퇴직과 가정파탄 등 그들이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존엄성은 여지없이 짓밟혀 버린 것이다.
이 같은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도록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던 공장경영자를 비롯 근로감동관, 관계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인간의 존엄성이 이처럼 철저히 파괴되고 있는데도 우리사회가 복지국가. 선진국의 대열에 한 발짝 들여 놓았다고 국민적인 자부심을 가질 수가 있단 말인가?
최근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 자료에 따르면 중화학공업의 발달 등으로 중금속 및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자는 매년 크게 늘어 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료에 의하면 직업병 유소견자(有所見者)로 판정받은 근로자 가운데 중금속 및 화학물질 중독자는 지난83년 70명에서 89년에는 1백87명으로 1백67%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간이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지혜를 개발, 활용해서 산업을 발전시키고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지닌 특출한 권능이요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이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 될수록 오히려 역으로 존엄성이 짓밟히고, 지혜의 활용에서 오는 결실이 어느 특정인 혹은 집단에만 돌아가는 부정의가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것 같아 참으로 가슴 아프다.
이번 원진레이온 사건을 지켜보면서 이 같은 부정의를 몰아내는 일이 이제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새삼 깊이 통찰하며, 우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공해산업의 실태부터 낱낱이 조사되고, 생명을 위협하는 직업병을 척결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 제도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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