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중 열에 아홉은 처방전을 서양말로 휘갈겨 쓴다. 암호같은 의학용어를 외국어로 그것도 흘림체로 갈겨쓰는 의사가 환자의 눈에 신비스런 존재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런 신비감이 치료효과를 높여 준다고도 한다.
중세 땐 신자가 성서 읽기가 어려웠었다. 그리스어 혹은 라틴어로 쓰인 성서는 유식자들만(거의가 성직자, 수도자들이었다) 감히 접근할 수 있었다. 좀 험한 말로 하면, 하느님 말씀을 이들이 독점했었다. 의학을 의사가 전유하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계층은 문자를 독점함으로써 권위와 특권을 유지하려 한다. 조선조 땐 공적문자를 한문으로 제한함으로써 지식을 사대부들이 독차지했었다. 한글창제 후에도 문자의 적자는 한문자였고, 한글은 서자 취급을 면치 못했다. 백인들은 흑인노예가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것을 엄금했었다. 알파벳을 익히다 들킨 노예는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다.
노예해방이 되자 마지못해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을 주게 되는데, 백인들은 자격시험에 합격해야만 투표소에 들어갈 수 있는 해괴한 제도를 만들어 낸다. 읽기와 쓰기를 못 배운 흑인들은 낙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이야기도 재미있다.
백인이라고 다 읽고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필답시험이 구두시험으로 대체됐다. 백인에게는 이런 따위 것을 물었다. “미국의 대통령 이름을 아는가?” 그러나 기어이 투표를 하겠다는 흑인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미국의 헌법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제창한 권력분립론에 근거하고 있는바, 이에 대해 너의 견해를 논하라”
한때 확 풀렸던 것 같던 교양이념도서에 대한 공안당국의 탄압이 다시 옥죄어들고 있다. 도서 압수, 출판인의 구속도 갑자기 늘고 있다. 천여 명의 문인·학자·변호사 등이 이런 탄압에 항의하는 성명을 냈지만, 그것이 과연 얼마나 먹혀들지는 아직 모른다.
재미있달지 씁씁하달지, 상식에 잘 닿지 않는 것은 압수 목록에 들어있는 책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나온 지 오래되어 찾아 읽을 사람은 다 읽었고 내용도 해독(解毒)이 다된 그런 것들이라는 점이다. 압수하는 것 보면 검열자도 재독·숙독·열독했을텐데, 그 사람도 불온에 물들지 않았을까 하는 짓궂은 궁금증도 난다.
왜 그 사람에게는 괜찮은 책이 국민이 읽으면 위험한 것이 될까. 국민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당국의 노파심이거나 국민을 우민화하려는 문자의 독점기도거나 둘 중의 하나일텐데 어느 쪽도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칼 포퍼라는 사람이 쓴 책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에서 ‘적’으로 지목된 인물은 플라톤과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였다. 과거에 이들을 헐뜯었던 어느 책보다 이론정연한 포퍼의 비판에 가장 분개했던 자들은 공산주의자와 그들의 정부였다(플라톤이나 헤겔을 국법으로 신봉하는 정부가 있었다면 이들도 마찬가지로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희한한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진저리치는 이 ‘반동적인’ 책이 우리나라 반공정부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낙인 찍혀 금서목록에 올랐었다는 사실이다. 스탕달의 연애소설 「적과 흑」 일본어판이 ‘적’이라는 글자에 질겁한 세관원에 의해 통관보류됐던 해프닝은 자유당 시절에 있었던 해프닝은 자유당 시절에 있었던 전위 예술이라고 치고, 5·16 이후에도 막스 웨버가 이 비슷한 곤욕을 치렀었다. 요즘도 마르크스를 ‘맑스’라고 표기하고 ‘막스’로 발음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공안당국이 ‘막스’와 ‘맑스’를 구분하지 못해 포퍼의 반공교과서(!)에 금줄을 쳤던 건 아닐 듯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마르크스는 읽다가 들키면 경칠 일도 겁났지만, 설사 그런 각오가 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구해 읽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한 가지 묘한 독서법이 발명된다. 그것은 포퍼의 것과 같은 책이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말을 모으고 짜맞춰 원전의 생각을 복원해 내는 실로 고고학적 작업을 방불케 하는 독서법이었다. 공안당국이 포퍼의 책을 금서목록에 올린 것은 이런 독서법의 위험성까지 내다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됐는가? 마르크스책에 쳐졌던 금줄이 걷히고 마음대로 찍어내고 팔고, 읽게 되자 깨어진 뼛조각을 짜맞추는 고고학자처럼 공들여 짜 읽던 독자들이 오히려 그 전처럼 읽지 않게 되었다. 열쇠구멍에 눈을 찌르고 진땀 흘리며 훔쳐보던 악동도 해수욕장의 공공연한 나신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는 경우에 비할까. 아무튼 위험한 책의 위험성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기에 금줄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짝 걷어내 버리는 일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가톨릭신문」에 쓴다는 것은 격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톨릭이야말로 금서목록의 선구자였고, 그 시행도 고지식하고 가차 없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톨릭은 금서에 관한한 어느 종교, 어느 이념집단보다 너그럽다고 장담할 수 있다. 분도출판사는 개신교신학서를 정성껏 펴내고 있고 교회의 권력을 서글프게 비판한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책들이 바오로 서점에서 권장도서 대접을 받으며 팔리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이런 책들로 인해 위험에 빠졌는가? 오히려 더 성숙해지고 더 건강해졌다. 공안당국이 참고할만한 실증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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