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다락방에 올라가기를 좋아했다. 따로이 내방이 없었을 뿐더러 햇빛이 들지 않는데다 쿰쿰한 책 냄새가 배여 있는 다락방은 방해 받지 않고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당시 내 상상의 질리지 않는 소재는 신데렐라 이야기였다.
착하고 아름다운 나는 계모의 구박을 받으며 고요한 절망 속에서 나날을 보내다 인자한 요술할멈의 도움으로 화려한 무도회에 초대받는다. 나를 본 왕자는 단번에 사랑에 빠지고 화려한 무도회의 추억을 멀리한 채 이루지 못할 왕자와의 사랑에 가슴저려하던 나는 변함없는 왕자의 사랑에 힘입어 극적으로 왕비가 되어 온 백성의 부러움과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된다…는 내용의 상상은 곧잘 저녁 먹으라는 어머니의 고함소리에 깨지기 일쑤였는데 낮에 못다한 숙제를 해야만 잠잘 수 있는 현실이 내게는 무척 냉혹하게 느껴졌었다.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차이를 깨달은 지 오래인 이즈음도 나는 곧잘 어릴 때처럼 신데렐라를 꿈꾸는 자신을 발견해내고는 나의 유아성에 대해 참담해 한다. 특히 어려움이 많을 때 영락없이 발휘되는 내 유아적 성향은 ‘신데렐라 콤플렉스’. 내게 닥친 어려움, 그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단계적으로 성실하게 풀어가려는 노력대신 누군가의 도움–요술 할머니나 왕자-으로 손쉽게 해결해 버리려는 습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나의 유아성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어려움에 봉착해서 ‘위기의 하느님(dues et machina)’을 부른다. 내게 닥친 어려움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내 탓의 과제인지, 단련을 위한 용광로인지 가늠해보기도 전에 하느님이 피터팬처럼 나타나 어려움을 제거해 주기를 바란다.
내 유아기적 신앙 안에서 하느님은 위기에 빠진 신디를 온갖 지혜와 힘을 발휘하여 구하는 피터팬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다.
대다수 여성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남성들의 이상형인 피터팬 신드롬은 성인식을 마친지 오래인 내 세대의 여성과 남성들 안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굽이굽이 복병처럼 숨어있는 위기의 순간에 여실히 그 유아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돌아보면 삶의 위기란 하나의 기회, 위험스럽지만 도전하는 자에게는 스스로 유리 구두와 드레스를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인 것을 깨달은 지금, 유독 좋아지는 시가 있다. 한 유대인 젊은이가 절망의 끝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노래한, 위기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영적 성숙을 성취한 그 젊은이의 노래가 이토록 가슴 저린 것은 아마도 좀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 트인 까닭이리라.
태양이 비치지 않을 적에도 태양을 믿노라.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적에도 사랑을 믿노라. 하느님이 보이지 않을 적에도 나는 하느님을 믿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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