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현존을 체험한 후 나는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기쁨과 또한 함께 계신다는 두려움이 오랫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아 안절부절 했습니다. 그러나 죄 중에 우리가 잘 걸려 넘어지기 쉬운 교만심은 언제 어디서나 틈을 보아 스며듭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 순간적인 체험으로 내가 성녀가 된 줄 착각하고 더 큰 유혹에 빠질 뻔 했습니다만 현명하신 주님께서는 책을 통해서 “이제부터 시작이다”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앙서적과 많은 성인성녀들의 전기를 한권 두 권 읽으면서 그분들도 어떤 순간적인 체험 때문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방향을 바꾸어 다시 새 생활을 사직하게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바오로 성인, 벨라뎃다 성녀, 그 외 많은 성인성녀들….
누구나 성인들을 사랑합니다만, 그중에서도 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더 한층 사랑합니다. 논리나 지식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던 그분도 순간적인 체험을 통한 만남 때문에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지식으로 닦아진 그의 오만을 통회하였습니다. 그 참회의 눈물로 그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성인과 악인이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만남은 분명 주님의 은총이며 구원입니다. 그 받은 은총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기도와 신심공부 그리고 성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꾸르실료를 다녀온 이후 새롭게 두 가지 갈등을 안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 말씀의 그 따르는 길을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기도생활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대한 양심의 가책이었습니다. 나의 기도생활은 부끄럽게도 몸에 생기가 넘칠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기도하다 몸이 피곤하면 며칠이고 팽개치는 균형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래도 나의 어머니처럼 꾸준한 기도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감사하게도 기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생겼습니다.
우연히 어금니가 흔들리기 시작하여 치과에 갔더니 치주염인데 흔들리는 어금니를 뽑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쯤이야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뽑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그렇게 소중한줄 모르다가 막상 뽑아버리니 하늘이 휑하니 뚫린 듯 느껴오는 허전함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형용키 어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선 언어에 많은 장애를 느꼈으며 음식물 씹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어리석고 철부지 같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믿는 마음으로 어금니 한 개가 다시 솟아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청하며 묵주의 9일기도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었던 나자로도 살리시는데 이 작은 어금니 하나쯤이야 주시지 않으시려고…”
기도라면 한 3일도 지루하여 지속하지 못하던 내가 54일간 꾸준히 지속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기도는 결심인가 봅니다. 기도드릴 때마다 하늘에 인장이 하나씩 찍히는 듯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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