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7일자 가톨릭 신문에 전국 3백명의 남녀 신자들에게 ‘한국교회의 장·단점, 요망사항, 전망’을 설문 조사한 결과 교회의 두드러진 단점으로는 성직자들의 권위주의, 교회내의 여러 가지 갈등문제, 본당 및 성당의 대형화, 냉담자 및 행방불명자의 증가 그리고 신자 재교육의 부족 등이 지적된 반면에, 50~80년대 한국 교세 분석에서는 최근 사제 지망자의 감소와 그 질적 하락이 지적되고 총신자의 22.93%인 59만8천9백79명이 냉담자 또는 행방불명자라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가 성직자를 중심으로 일치하고 전례가 통일되며 조직 및 위계 등이 잘 이루어져 있어서 신자들이 가톨릭에 긍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교회의 조직과 제도, 교회법과 성직자의 권위, 교의와 전례 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삶, 즉 복음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그 형식과 이론이 훌륭할지라도 그 목적이 잘 드러나지 않거나 내용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거기서 어떻게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겠는가. 최초에 복음(그리스도의 삶)이 있었고 거기서 영성이 생겨났고 그 영성을 조직한 것이 전례법규와 교회법, 조직과 제도이며, 그 영성을 지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교리이며 신학이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복음은 사람들의 매일생활의 구체적인 문제·과제·체험에 침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회의 조직·제도는 언제나 인간의 야심이나 자존심에 의해서 복음의 정신을 왜곡하거나 손상할 염려가 있다. 사귐이 아니라 강제, 봉사가 아니라 지배가 자행하면 그 조직은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이 인간의 약함과 아픔 그리고 슬픔에 바탕을 둔 사랑의 선교와 사목이 못된다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점에서는 오히려 본당이나 조직이 크기보다는 작고, 성당이 화려하고 거대하기보다는 검소하고 작은 것이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되기 쉽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살기가 쉽지 않을까. 남미와 필리핀에서는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의 운동이 매우 활발하다고 한다. 슈발츠 (소) 신부는 「The Starved and Silent」(굶주린 사람과 말없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화려하고 거대한 성당이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난하게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 아기를 알 수 있겠는가고 말하고 있다.
신앙 및 전례와 생활의 분리가 오늘의 교회의 문제이다. 신자들은 교무금을 내고 미사에서 헌금한다. 돈은 가장 일상적인 것이다. 이 돈에 복음의 정신이 함께 하지 않으면 생활의 성화나 사회의 복음화는 불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겨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해 주십사하고 하느님께 돌려주는 것이 헌금이다. 즉, 모든 헌금이나 재물의 본질이 하느님께 ‘아멘’하고 응답하는 사랑과 감사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은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마태오 23,23)고 함으로써 제의규정과 모든 율법을 사랑의 계명을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위선적인 종교의식을 규탄하여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스 5,21-24)고 말한다. 따라서 제물을 비롯하여 교무금이나 모든 헌금은 사랑과 감사의 영성을 배우고 기르는 귀중한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례가 단순한 종교의식이나 지켜야 할 의무의 대상으로 끝나버린다면 일상생활과는 멀어지고 우리에게는 무의미 할 것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정에서 “전례는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10항)고 말하고 있으며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전례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우리들 일상생활의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기도 하다.
법에는 입법자의 정신이 중요하듯이 교회법에는 영성과 사랑이 중요하다. “문자는 사람을 죽인다”(Ⅱ코린토 3,6)는 바울로의 말처럼 법을 준수하는 자나 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자는 입법자의 의도를 확인하지 않는 학에서는 언제나 율법주의에 빠질 위험이었다. 율법은 우리에게 의무를 주지만 사랑은 자유를 준다. 율법은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강제하지만, 사랑은 무엇을 하기를 원하게 하고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사랑이 자유를 준다는 것은 상대편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 사람의 자발성을 중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직자의 권위를 신자들이 존경하는 것은 그 권위에 맡겨진 공동선 또는 공동체 때문이다. 사제로서의 성직자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봉사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닐까. 성직자는 ‘높은 분’ ‘지배인’ ‘신분 높은 자’가 아니다. 교회의 성직위계의 이미지에는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잘 나타나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에는 로마 교황의 취임식은 ‘三重冠’(삼중관)을 머리에 쓰는 대관식이었으나 이제는 현교황의 전임자 요한 바오로 1세는 이 대관식을 폐지하고 ‘최고 목자의 취임식’으로 대치했으며 알현시에 가마를 타고 입장하는 관례도 폐기하고 교황의 전통적인 자칭어 ‘우리들’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봉사자들의 봉사자임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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