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계속하여 청원의 기도를 마칠 때쯤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두 무릎을 꿇고 소리 내어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성모송의 응송인 “천주의 성모마리아여!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하는 나의 음성이 이상하게도 간곡한 부르짖음과 간청의 소리로 메아리 되어 돌아와 내 귓전을 울렸습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온 몸의 피가 빠져가는 듯, 호흡이 정지되는 듯 했습니다. ‘아, 내가, 진정 주님 앞에 죄인이구나’하는 뜨거운 체험은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냉철하게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 새로운 눈뜸으로 성모님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존재이시며 어떠한 위치에 계시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지금까지는 입으로만 말해왔지만, 지금부터는 진정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죄인입니다. 죄인인우리가 어떻게 감히 지존하신 분께 곧바로 용서와 자비를 청할 수 있겠습니까. 성모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중재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와 자비를 얻어 은총 속에 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왜, 주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용서 하소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는지. 그리고 천주의 성모 마리아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는지를 깊이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된 모든 기도문을 끊임없이 바치면 성인들과 한가지로 마지막 날에 구원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누가 백번 설명한들 이토록 명백하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지향했던 대로 9일 기도를 마쳤지만 어금니가 새로 돋아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장애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새로 얻는 것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장애에 적응하는 것임을 겸손되어 알아들었습니다. 때는 장애자 올림픽이 막 끝났을 무렵인데 장애를 극복한 많은 선수들의 활기찬 모습들을 화면을 통해 보면서 이미 그들은 장애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나에게 어금니를 새로 돋아나게 해주셨더라면 나는 더 큰 교만심에 빠져 정신적 장애자로 남았을 것입니다. 54일간의 긴 기도를 마치면서 주님의 은총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깊이 깨닫게 되었고 구하면 그 이상의 것을 주신다는 성서의 말씀대로 만족하게 내려주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로사리오 9일 기도를 계속 드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내 이웃에도 많이 권유하고 있습니다. 매번 지향을 바꾸면서 성모님께 청할 때 내려 주시는 은총은 각별한 깨달음입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나의 내적인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된 마음은 내 부모 형제 이웃에 까지 전파되어 감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나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원이라는 신학자들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전에는 기도할 때 항상 나 혼자 잘되기를 염두에 두었지만 이제는 주님께서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평화롭도록 주님께서 함께 이끌어주신다는 겸허함과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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