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시국(致死時局)의 암울한 먹구름이 언제쯤 걷힐 것인가? 학생·노동자 등 젊은 생명들의 잇단 분신, 학계·종교계·법조계 등 각계각층의 공안정국퇴진 규탄성명,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데모와 화염병·돌·쇠파이프 또 이에 맞서는 최루탄과 폭력적인 진압 등, 이 나라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미의 극을 달리고 있는 듯하다.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이양 받은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 여·야를 막론하고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 시대 이 시간,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방방곡곡에 심고, 우리 모두가 한마음 한 몸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서울 세계 성체대회의 정신을 새삼 가슴깊이 아로새기며 또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오 주여!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죽음으로써 영생을,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우리 온 국민의 가슴 구석구석에 가득 부어 주소서”
우리는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저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보다 알찬 삶을 위해 선량한 양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하루하루의 삶을 행복스러워 하고 또 나름대로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보통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 보통사람들의 시대에 어찌하여 희망도 미래도 없는 암울한 죽음들만이 속출하고 있단 말인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죽음이나 그 불의에 항거하여 분신한 죽음은 ‘열사’니 ‘민주국민장’이니 하는 것 등으로 그 영혼이 다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집세를 마련 못해 세상을 떠난 죽음, 교통지옥과 치안의 무질서에서 비롯된 죽음들, 이러한 사람들의 영혼은 또 어쩌란 말인가?
이런저런 생명이던 간에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존엄하고 고귀한 것일 텐데.
최근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의 우력지 르 몽드지는 ‘서울의 열기’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근 국내 반정부시위의 심각성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면서 “데모의 저변에는 인플레, 환경오염 등 사회적 긴장과 불안이 깊게 깔려있으며 여기에 93년 노대통령의 후계와 관련한 집권 민자당내의 파쟁, 그리고 일련의 부패스캔들에 대한 불만감이 더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제 지금 이 혼미스러운 시점에서 우리는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약속한 노태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자고 한다.
민주정치는 무엇보다 책임정치의 구현에서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민은 위정자를 믿고 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고귀한 생명을 희망 없는 암울의 세계로 내몰 수 없는 막다른길에 다다른 것이다. 화해가 아닌 정면대결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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