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살 것 같다. 내가 건강에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아주 특별한 선물을 하나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남양성당은 3개 면을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이 넓다. 그 때문에 다른 성당에 비해 공소가 많이 있다. 그래서 판공성사 때가 되면 미사 가방을 싸가지고 공소마다 찾아다니며 고해성사를 주어야한다. 대략 두 달 반 정도를 돌아 다녀야 판공성사를 마칠 수가 있다. 지난 성탄절, 판공성사를 주러 다니던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그날 내가 성사를 주던 공소에는 성사를 주는 자리에 커튼으로 휘장을 쳐서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해놓았었다. 한참 고해성사를 주고 있던 중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얼굴이 안보이게 쳐 놓은 막을 들치고 수단밑자락에 손을 집어넣고는 자꾸 발을 더듬으시며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한 내가 “왜 그러세요”하고 묻자 발을 툭툭 치시면서 “신부님 드리려고 이것 사왔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포장지를 펼쳐 보니까 그 안에는 예쁜 꽃 손수건이 한 장 있었다. “할머니 이거 웬 꽃 손수건이에요” “음, 이따가 미사 끝나고 드리면 다른 신자들이 보고 노인네가 주책없이 신부님께 뭐 드린다고 흉볼까봐 지금 몰래 드리는 건데 그 손수건 오늘 아침 일찍 내가 장에 나가서 사왔어요. 왜냐하면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한테 예쁜 꽃 손수건을 선물하면 그걸 받은 젊은 사람이 아주 오래오래 산다고 해서 말야. 그래서 신부님 드리려고…”
갑자기 코끝이 싸해졌다. 신부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사랑이 마음에 와서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마워요 할머니. 그럼 성사 보세요. 죄지으신 것 없으세요” “죄, 죄는 무슨 놈의 죄야. 그저 사는 게 다 죄지. 그냥 알아서 용서해 주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90이 다 되신 할머니가 사다주신 꽃 손수건. 남이 쉽게 받을 수 없는 귀한 선물이기에 그 할머니의 말씀대로 나는 오래 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그런 선물을 내게 준 할머니의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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