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오늘을 사는 천주교 신자라면 교회가 국가보안법폐지를 앞장서 주창하는 이유와 집권층이 끝까지 이 법을 유지하려 하는 까닭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제정된 이법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역대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민주화와 북방정책의 변화를 맞고있는 현정권 아래서도 40여년전의 옛 모습을 의연히 견지하면서 그동안 수십만명의 정치인 지식인들을 처단하여 왔다.
이현령 비현령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이법이 정적과 비판세력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악용되어왔고 또 실적제고의 공을 다루는 수사기관과 정권의 눈치를 알아서 살피는 사법기관에 의하여 공동연하게 남용되어 왔다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던 까닭에 노태우 대통령 후보조차도 이의 개폐 필요성을 시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때마침 전개된 공안정국상황에 편승하여 아직도 우려하는 공산주의위협이라는 명분으로 보안법 고수를 천명함으로써 예상했던 본색을 드러내 놓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법이야말로 역대독재자들의 정권안보를 가능케하였던 전가의 보도로서 이것 없이는 체제유지에 자신이 없다고 판단할 때문일 것이다.
이제 문제가 되었던 몇개 조항을 살펴보자.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나 금지령을 받은자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주는 행위 그밖의 지원을 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자진지원, 금품수수죄」라는 것이있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죄인이라 하더라도 친척이나 우인으로 또는 인도적 심경에서 필요한 재화를 수수할 수 있으며 경제적수요에 의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자연법적 법감정을 지니고 있다.
다음 이들과 회합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하면「회합통신죄」로 처벌되는데 이것도 인간의 사회성에 반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조항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신부님들에게 적용된「잠입탈출죄」라는 것이 있다.
문명상으로는 남모르게 가고 오는 행위를 벌하는 것처럼 보이나 천하가 다알도록 공개하고 가거나 TV중계를 받으며 돌아와도 모두 이죄에 해당하고 또 가고 오는 목적이 체전이거나 관광여행이거나 종교행사거니를 가리지 않는다. 이것이 거주와 이전의 자유, 교통권을 침해하는 반자연법적 위헌적인 규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음 문명국법체계상 유례를 찾기힘든「불고지죄」라는 것이 있다.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사실을 알면서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것이다. 알게된 경위가 어떠하든 그리고 상대방과 어떠한 관계이든 가리지 아니한다.
남의 죄를 용서하고 눈감아 주는 고도의 윤리성이 죄가 되는 것이고 부자형제간에 서로 고발하라는 반인륜을 강요하는 것이다.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 누설 전달하면 처벌되는데 보안법이 말하는 기밀은 보통의 상식과는 판이하다. 즉 신문방송 등으로 모든 국민이 다알고 있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북한측이 알면 북한에 이익이 될 수도 있는 사실이면 국가기밀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대법원이 내린 해석이다.
끝으로 보안법의 꽃이라고 불리는「찬양고무죄」라는 것이있다.
찬양 고무 또는 동조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자를 벌한다는 것인데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고 이롭게 하였느냐의 여부를 역사 정치 외교 군사 등을 모르는 법관이 마음대로 판단하도록 되어있다.
또 여기서는 적을 이롭게하는 도서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 복사 소지 판매 취득하면 처벌하는 이적표현물에 관한 죄도 포함되는데 공부하기 위하여 혹은 호기심으로 낯선 책을 구입한 무수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만든 조항이기도하다.
국가의 안전보장아이라는 개념의 전통적 의미는 영토보전이다. 그러나 신식민지적 주변부국가에서는 이개념의 뜻이 달라진다. 주도적 지위에 있는 중심부구가(강대국)와 체결한 군사동맹에 의하여 외국군이 주둔하거나 핵기지가 설치되어 종속국의 영토를 수호해주는 까닭에 종속국지배자들은 주종관계와 지배체제의 안전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국가안보가 체제안보 내지 정권안보로 변화되는 이치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안보는 반공을 대명사로 하는 것이 특색이다. 반공이 곧 안보이고 안보하면 반공을 의미한다.
국가조직의 목표는 국민의 자유평등(등 따습고 배부른 백성의 삶)에 있고 이 자유평등을 실천하는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의 하나가 반공인 것이므로 반공은 국민의 자유평등을 위한 방법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체계가 전도되어 있다. 반공을 위하여서는 국민의 자유도 얼마든지 제한하고 박탈할수 있다고 승인되어 온것인데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이다.
실로 반공이야말로 역대정권의 존립을 지탱해온 이데올로기였고 반공이야말로 무수한 정적과 비판세력들을 탄압하고 제거하는 이데올로기였다.
동구라파 공산국들과 친구가 되고 소련 중공과 내왕을 하는 격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북한은 더 이상 적이 아닌 공동운명의 동반자라고 선언을 하면서도 아직도 40년전의 반공이데올로기는 건재하다.
나라를 변란하거나 간첩을 하는 행위는 다른법률로 얼마든지 규제할 수 있다. 정치적악용과 사법적 남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법은 폐지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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