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햇볕에는 딸을 내보내고 봄햇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낸다더니….
이 봄볕은 더 따갑고 더 잘 그을리는가 보다. 한 3개월을 매일이다시피 성지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무를 심고 돌을 쌓는 등 조경공사를 했더니 얼굴이 까맣게 됐다. 그래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신부님 이젠 농사꾼이 다 되셨네요”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러 생각이 가슴을 저민다. “그래 내가 햇볕에 그을리며까지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게 된 것은 모두 그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이란 나와 함께 하루 한나절 동안 둘 쌓는 일을 했던, 젊은이를 말한다. 89년 11월 늦가을 어느 날, 돌 쌓는 석공이 그 사람을 잡부로 데리고 와서 성당에 돌을 쌓았었다. 인상착의에서 별다른 느낌은 받은 것은 없다. 다만 젊은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한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옆에서 돌 쌓는 것을 지켜보며 간단한 일만 돕곤 했다.
일이 끝난 다음, 다음날 일을 하기로 하고 석공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떨어지자 그들은 일하려 나올 수가 없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오전에 비가 멈춘듯했다. 부랴부랴 연락을 했더니 모두들 나왔다. 그 젊은이도 왔다. 돌을 다시 쌓기 시작했는데 서너 시 경쯤 되어서 찬비가 추실추실 또 뿌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들은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비를 맞아가며 계속 돌을 쌓았다. 나는 추위를 느끼면서 일을 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했다.
일을 마친 그들에게 사무장이 그날 품삯을 계산해 준 다음 그들이 막 자리를 떠났을 때 사무장에게 물었다.
“얼마 주셨어요?” “예 오늘은 오후 한나절만 일했기 때문에 석공은 3만원 주고 잡부는 만원 주었어요” 그 대답을 들으면서 “돈 만원 벌기가 저리도 힘든 것이구나 찬 비를 맞으며 시린 손으로 돌을 들어 나르고 신발엔 흙을 덕지덕지 묻히고…” 이렇게 생각하며 이미 성당 문밖으로 나간 일꾼들을 뒤쫓아 가서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나를 보며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이튿날 일을 시작했을 때 그 젊은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은 왜 나오지 않았어요?”라고 묻자 석공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요! 어제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뭐라고요?”하며 내가 깜짝 놀라자 “그 사람 돈 벌어서 장가간다고 제 밑에 와서 일한건데 참 안됐어요. 그 놈의 돈 때문에 장가도 못가보고 죽었어요”라는 것이었다. “그가 죽었다고요…” 그가 돈 만원을 벌기 위하여 가을 찬비를 맞으며 시린 손으로 쌓아 놓은 돌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려 본다. “돈 만원 벌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데…”
그 이후 나는 무슨 일이든지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일을 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돈 버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 주여! 왜 어떤 사람은 돈 만원을 벌기 위해 찬비 맞으며 고생해야 하고 누구는 가만히 앉아서 떼돈 벌어… 떵떵 거리며 살아갑니까? 주님! 불쌍하게 죽은 그 젊은 영혼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성당 마당 돌더미 위에 앉아 주께 바치는 가슴 아픈 나의 회상이며 기도이다. 사도행전 20,33-35 말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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