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의 최귀동 할어버지가 지난 1월 4일 타계했다. 매스컴에서는 그를「거지천사」또는「거지성자」로 까지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걸인생활로 일생을 살아온 평범한 한 할아버지의 생애가 우리에게 크나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오늘의 「꽃동네」가 있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위치한 꽃동네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무의무탁자들의 안식처이다.
물론 꽃동네를 지금과 같이 키워온 것은 최귀동 할아버지의 능력 때문에 아니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때 일제에 의해 일본 북해도 탄광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숱한 구타 등으로 정신이상자가 되어 귀국, 고향땅에서 걸인생활로 연명해온 우리의 가난한 이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착한 천성은 자기보다 더 불쌍한 이웃, 「얻어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의 이같은 크리스찬적 사랑의 삶은 당시 무극본당주임 오웅진 신부를 감동시켜 무극본당「사랑의 집」을 탄생시켰다.
꽃동네의 전신인 사라의 집은 우리 모두에게「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게 해주었으며 오늘날 꽃동네의 정신으로 살아숨쉬고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귀한 자식이라 하여「귀동」으로 불렸던 그가 타의에 의해 정신이상자가 되었고 부모·처자식마저 잃고 걸인으로 살아온 것은 그 시대 우리의 이웃들이 드물지않게 겪어온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0여년간에 걸친 그의 걸인생활은 자신보다 더 불쌍한 걸인, 병들어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마저 상실해버린 걸인들에게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생활이었기에 위대한 생애였으며 우리를 감동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진것 없는 걸인이었으나 가진것 없이도 베풀수 있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음을 소리없는 사랑실천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왔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 임증해 보여준 것이다.
그저 착한 천성으로, 온 몸으로 이웃에게 봉사해온 그의 사랑실천으로 꽃피운 곷동네는 15년전 5세대 18명에 불과하였으나 이제는 1천 8백명의 대식구를 거느린「꽃도시」로 성장했다. 사랑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수 없다.
그의 일생은 우리에게 사랑의 위대함과 사랑실천의 고귀함을 깨우쳐주고 있다.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늘 부족해하고 욕심에 가득찬 생활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는「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고 실천한 용기있는 신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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