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로마에서 온 두 신부와 관광차 수원 근교에 가게 되었다. 서울을 얼마간 벗어나자 그들은 차창에 스쳐 지나가는 가을 경치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도 그날을 돌이켜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왜냐하면 차창 밖에는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산·밭·논 할 것 없이 자연을 무참하게 짓밟고 한없이 뻗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적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것을 보았더라면 가을경치에 대한 감탄은 고사하고 아마도 기절초풍하였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지녔었다. 그들의 자연관은 수용적, 관조적, 조화적이었다. 그런데 언젠부터인가 자연에 대한 동양인의 태도변경이 급속화되면서 오늘에 와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세계가 인간의 공격적, 모험적, 지배적 대상이 되어버렸다.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 지구는 벌써부터 병을 앓고 있다. 과학과 기술문명의 발달 뒤편에는 제어되지 못한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무분별함이 함께 자리하고있어 자연파괴라는 엄청난 죄악을 범하게 되었으며, 이로인해 인간은 지구의 고통만이 아닌 세계의 죽음까지 끌어들이게 되었다. 실지로 사람들은 개간과 개척의 이름을 앞세우고 자연을 무자비하게 훼손시켰으며 공업화와 근대화는 하늘과 땅을 온갖 공해로 물들였다. 어느 과학자가 말했듯이 인류가 문화와 더불어 이 세계에 출현했던 일만년의 짧은 역사는 40억년이라는 장구한 역사 속에 보존되어 온 지구의 조화를 완전히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제는 사람보다 자연 혹은 세계를 걱정해야 한다는 요셉 메리노의 주장은 매우 돋보인다.
니체는 자연이 인간과 관련하여 아무런 의견을 갖고있지 않다고 했다. 그럴듯한 말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언어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은 달래기가 힘든 반응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보복하고 벌할 줄을 안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 보상할 줄도 안다. 한마디로 자연보호는 인간보호이며 자연 파괴는 인간파괴와 직결되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정신적 삶은 자기존재의 내부성에 그치지 않고 외부세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동시에 인간은 세계에 의해 제한된다. 이유는 세계가 인간앞에 있기때문이다. 실존철학은 오늘에 와서 이 세계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해야하며 행위할 것인지에 관하여 가치있는 분석들을 제시하였다.
인간은 고도한 존재도 아니고 자기 자신 안에 닫혀진 존재도 아니다. 그는 세계로 열려져 있으며 세계안에 있는 것들과 살아숨쉬는 관계를 맺고있다. 그래서 야스퍼스는『세계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고 나없이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긍정은 세계에 대한 긍정을 필연적으로 요청하며 세계에 대한 긍정은 인간에 대한 긍정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인간은 세계 앞에서 제한된다. 그가 육체를 지니고 있는 이상 근본적으로 세계에 매여있음은 확실하다. 따라서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태도표명과 직결된다.
그리고 세계 속에 산다는 것은 세계 속에 산다는 것은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존재론적 연관성을 드러냄이다. 이것을 세계 속에 있는 그 모든 것이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가 발견해야 함을 뜻한다.
많은 위대한 성인들은 바로 이러한 면에 있어서 놀랄만큼 뛰어난 직관력과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세계안에 현존하는 것들을 자기소유로 하지 않았으며 자연을 결코 이용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합당한 존중심을 드러내 보였으며 자연을 바라다 보기만 하는 구경꾼이나 관광객이 아닌 감탄의 대상으로 변모시킬 줄 아는 신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왜냐하면 코임브라의 말대로『사물들은 무한한 존재의 확장임』을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 기상이변과 더불어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작년 평균기온이 예년보다1도가 높은 사상 최고였음이 확인되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이 같은 온난화 현상은 지구의 대기순환 패턴에 크게 영향을 끼쳐 이상 난동, 겨울 호우, 가뭄등의 가상이변 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빨리 손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전대미문의 엄청난 재앙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자연보호와 관련된 연구들이 철학과 신학 분야에서도 일고 있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구 살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그들은 협의회를 구성하고 모임을 가지면서 전 세계의 인류가 자연의 공유한 가치와 의미를 깊이 인식할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것은 세계와의 진정한 존재론적 관계를 인간에서 요청함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 하기를 원하고 훗날에 있을 인간역사의 완성을 진심으로 기대하는 자들이라면, 자연에 대한 사랑과 존중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정신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단지 길가에 버려진 휴지나 쓰레기를 줍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욕망에 고삐를 채워 자연파괴에 관련된 생산주의와 소비주의의 악순환에 쐐기를 박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유와 창조성 그리고 독창성을 표현하게 되고 세계 안에는 기쁨의 상호인격적 관계들이 샘솟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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