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명은 이미 쇠퇴하고 있으며 앞으로 세계인류를 이끄는 정신적 힘은 동양에서 나올 것이다. 그런데 중국대륙은 죽의 장막에 가려 언제 자신을 개방할지 조차 모르고 일본은 이미 서구화되어 일본 고유의 그 무엇을 잃고 있다. 따라서 세계를 지도할 힘은 한국민의 정신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소설「25時」의 작가 게오르규가 한국에 왔을때 한 연설의 일부였고 고무적인 선언이었다. 세계를 이끌어갈 한국의 정신이란 관연 어떤 것일까?
특혜대출받은 운영자금을 빼내어 땅 사재기에 급급하는 기업가들, 그래서 기업이 망한 뒤에도 의연히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살면서 해외여행을 즐기는 재벌들, 전국 누비며 부동산 투기를 부추김으로써 허리띠를 졸라매며 힘겹게 따라가는 서민들의 내집마련의 꿈을 박살내는 복부인과 졸부들, 쥐꼬리만한 봉급봉투까지 내밀면서 연일 증권정보에 눈알이 박히고 있는 샐러리맨과 주부들….
이러한 사람들의 머리를 꽉채우고 있는 정신, 그러한 정신을 분명 아닐 것이다.
선거때면 철새처럼 쏟아져나와 저마다 애국자라고 외치면서 한자리와 한몫을 노리는 정상배들이나 온갖 기교와 아부를 다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엽관배들이 펼쳐보이는 기회주의, 출세주의, 그것도 물론 아닐 것이다.
그것은 분명코「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개 베고 하늘을 쳐다보는」선비들의 정신이라고 나는 믿는다.
돈은 벌어야 할뿐만 아니라 축적도 해야한다. 벼슬도 높을수록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육체를 지니고 시간적 공간적 조건 속에서 생존하는 까닭에 의식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화는 물론 인간다운 삵이 가능할수 있는 재화도 가져야하며 나아가 사회적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소요되는 재화까지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필요한 범위의 돈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경제적 인격의 조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바늘귀를 바라보는 낙타로 비유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문제는 돈과 벼슬을 탐내는 목적이 무엇이며 지니고 있는 돈과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다.
인간은 살기위하여 먹는다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먹기 위하여 사는지 살기 위하여 먹는지를 가리지 못하는 동물과의 차이점, 즉 이성과 지혜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존재하기 위하여 소유하고 향락한다. 존재는 목적이고 소유는 수단이다. 목적과 수단이 혼동되거나 뒤바뀌게 되면 먹고 향락하기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하여 인생을 산다고 하는 가치전도가 일어나며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돈과 명예는 삶이라는 존재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이것들 때문에 삶의 보람과 가치를 손상하거나 타락시켜서는 안된다. 이와같은 인생관, 가치관을 지는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선비인 것이다.
그러면 존재의 발전 즉 삶의 보람은 무엇인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사랑이고 창조라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고 있다.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는 스스로 존재하는 실재이면서 존재자체로서 사랑인데 사람은 창조주의 창조 원의에 따라서 만들어졌고 또 생명을 허여받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의의, 사는 목적은 창조주의 원의에 부응하여 사랑하고 창조하는데 있다고 쉽게 결론
지을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고 창조하기 위하여서 만 재화도 권력도 쾌락도 정당화된다. 재물과 명예를 소중히 알고 그것을 추구하되 그에 탐닉하거나 얽매이지 아니하는 자유인, 그러면서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선비라고 부를수 있는 것이고 교회가 말하는 청빈에 유사한 본질을 갖는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재물욕에 얽매어 있으면 청빈이 아니고 오빈(汚貧)이다. 대재벌도 소유욕에서 해방되어 있으면 청부(淸富)이지만 가진 것이 모자란다는 욕심때문에 사랑하고 창조하기를 게을리할 때에는 오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유욕에서 해탈하여 인생과 우주의 진리를 궁극적으로 탐구하면서 이웃과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이 추구해야할 이상을 보여주던 우리 조상 선비들의 성신, 이 정신이야말로 한국을 한국다웁게 하는 정신일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새파란 의사·변호사들이 개업하자마자 빌딩짓고 땅루자하는 일에 정신이 빠져 소시민화되는 시류에 한탄을 하면서도 다른 많은 젊은이들이 지성인으로서의 높은 긍지와 사명의식을 가지고 사회와 나라를 위한 봉사, 자기인격의 완성을 향한 부단한 정진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 나라의 확실한 장래를 낙관하는 것이다.
수천년의 외침과 압제, 정체와 혼돈에 시달렸던 우리지만 우리는 어느 민족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조상의 선비정신을 물려받았다. 이 전신이 세계문명의 새 기원을 열것이라는 게오르규의 예언을 성취시켜야할 역사적 책임을 함께 통감하자고 제언하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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