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어스름 해질 무렵이었다.
무거워 보이는 큰 가방을 메고 어려워하며 그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은.
“저 힘드시겠지만 이것 하나 팔아 주시겠어요? 고무장갑도 있고 수세미·이태리타월도 있습니다”
바라본 그의 모습은 비굴함이나 애원보다는 겸손이 몸에 배인 조신함과 미소와 어떤 부드러움이 있었다.
왼손이 뭉텅 잘려나가고 오른쪽 한손으로 물건을 들어 보이는 그 얼굴 표정에는 슬픔이 눈물 되어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나 그 슬픔을 인내하며 당당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려는 의지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고무장갑 하나 주세요”
돈을 주고받고 그가 나갔으면 그만이었을 텐데 무슨 여유에선지 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고는 8개월 전 일하던 공사장에서 크레인을 운전하다가 순간적인 부주의로 일어났다고 했다.
집이 서울이고 지금은 부산 평화시장 귀퉁이에 조그만 방을 하나 얻어 혼자 생활하고 있으며 이따금씩 칠순의 노모에게 전화로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
행상을 하며 초라하게 살 바에야 낯선 사람이 사는 객지를 택했고 어머님께는 취직을 해서 걱정 없이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도 했는데 빨래 걱정을 하시는 어머님께 맘씨 좋은 이웃 아주머니가 다 해준다고 안심을 시켰다고도 했다.
서른이 갓 넘었을까.
건강한 몸으로 가정을 이루었다면 한창 단란하게 인생을 시작했을 텐데-.
마침 모아 놓았던 가톨릭신문을 전하면서 신앙에 대한 여러 가지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믿음의 힘은 인생을 살아가는 어려운 순간순간에 커다란 힘이 되어줄 것이란 내말에 그는 참으로 밝은 표정으로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여 주었다. 고마웠다.
출생이나 고통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듯이 삶에서 죽음까지의 어떤 여정이 보이지 않는 이의 섭리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그가 사고를 당하고 죽음을 꿈꾸기도 하면서 지낸 오랜 투병기간 동안에 터득한 하나의 진리라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되고 배운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은 겸허한 마음을 배웠구요. 그리고 이 세상에는 아직도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끔씩 마주치는 아는 이들이 ‘오늘 많이 팔았어요?’라고 인사의 말을 해주며 ‘정말 많이 팔았어요’라고 대답 했을 때 함께 기뻐해주는 그들의 선량한 마음은 제가 큰 용기를 주기도 한답니다.”
그가 한 이 말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악을 허용 하시는 때는 오직 그것이 선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때다”라고 한 까를로 까레또의 말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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