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자들의 대부이기를 자칭하는 사람이 있다. 언제나 오른쪽 허벅지 한 가운데를 오른손바닥으로 짖누르고 절룩거리며 걸어다니는 남루한 옷 차림세의 초라한 모습이 이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하겠다. 양말 행상을 하는 이 사람은 자신이 심한 혈우병 환자이기도 하다. 나이가 오십이라는 이 사람은 아직도 독신이다. 결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생각을 해본 일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달에 일주일 이상은 자신의 치료에 시간을 보내어야 한고 나머지 시간은 양말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혈우병 환자들이나 그들의 어머니들의 자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새벽미사는 그의 일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항상 하느님과 같이 있지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매일 같이 특별히 기도를 한다고 한다. 자기의 병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를 돌보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께 드리는 감사의 기도와 동료환자들의 고통을 덜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혈우병 환자들을 도와주는 주위의 낯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혈우병이란 희귀한 병이다. 그리고 이 병은 현대의학으로는 아직까지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다.
십수년전까지하여도 선천성 심장병을 앓은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어서 수술하여 생명을 구하였다는 기사가 신문지상에 보도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수술이 가능하여졌다. 심장병 환자들을 돕는 단체가 생겨 가난한 심장병 환자들의 수술에 많은 도움을 주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돈을 들여 수술을 하면 심장병은 완치가 된다. 그러나 혈우병은 출혈이 있을 때마다 응급수단으로 출혈을 막아주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혈우병이란 유전병의 일종이다. 여성은 유전인자만 가지고 있고 남성에게만 유전되어 생기는 특수한 유전명인 것이다. 쉽게 풀이하여보면 혈우병의 유전인자를 가진 어머니가 아들을 두었을 경우 이 아들에게 유전인자가 유전되면 혈우병 환자가 된다. 그러나 유전인자가 유전되지 않았을 경우는 아들이라도 혈우병 환자가 되는 않는다. 여자아이일 경우는 유전인자가 유전될 경우라도 혈우병 환자가 되지는 않으나 그 여자 아이의 아들에게 혈유병 환자를 발생하게 할 수 있으며 또 한 그의 딸에게도 유전이 가능한 유전인자를 전할수 있다. 혈우병 환자의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우리 나라의 여러 보고서와 일본의 보고서 등을 참고하면 인구 1만 5천내지 2만 5천명에 1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혈우병 환자들은 다른 병의 환자들보다 자기몸의 보호에 대하여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한다. 부딪치거나 상처가 없어도 내부출혈이 있어 고통을 받을 수가 있으나 외부의 충격이나 심한 운동으로 인한 혈관손상으로 오는 출혈이 더 많기 때문이다. 넘어지거나 아니면 조금만 부딪치더라도 그 자리에 출혈이 생겨 심한 통증을 일이킨다. 혈우병 환자들에게서 생긴 출혈을 막을수 있는 약이 발견되기 전에는 많은 혈우병 환자들이 학동기에 죽었다고 한다. 학동기가 되면 이빨을 갈기 시작한다. 이때 생기는 출혈을 멀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15세 이상이 되면 그전보다는 발병의 빈도가 줄어들지 않나 생각된다. 철이 들기 시작하면 자기의 몸을 자기가 보호할 줄 알고 또한 위험으로부터 사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혈우병 환자들이 출혈기에 느끼는 통증을 글로써는 표현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강한 진통제라도 그 아픔을 진정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따지않은 새 깡통을 잡으면 그것이 쭈그러들도록 눌러질 정도의 견딜수 없는 아픔인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진정시키는데는「항혈우병인자」라는 것을 투여하는 길밖에 없다. 이 약을 투여하면 심한 통증은 일반적으로 바로 없어진다. 항혈우병 인자라는 것은 혈우병환자들에게는 없고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정상적으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람들로부터 헌혈을 받아 항혈우병인자를 추출하여 만드는 것이다.
십수년전만 하여도 이약을 구하기는 힘들었다고 혈우병의 대부는 말한다. 미처 약을 구하지 못하였을때는 병원에 가서 수혈을 하여 급한 경우를 넘긴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항혈우병인자들 투여하여 통증이 없어지면 그 원망스럽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기에게 그렇게 인자하고 자상한 얼굴로 바뀌어 진다는 것이다. 자기가 태어나 살아오면서 특히 국민학교에 다닐때에는 혹시나 다칠까바 같이 학교에 다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 세상의 어느 어머니보다 더 자랑스럽기만 하다고 한다.
환자나 환자보호자들의 심정은 대부분 자기와 같은 병으로 오래도록 고생한 사람들의 치료에 대한 체험담을 듣기를 좋아한다. 특히 불치의 병이나 민성병인 경우는 더하다. 이 혈우병 환자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잘못 판단하는 것을 바로 잡아주어 치료에 도움이 되게 유도하는 것도 대부분 큰 일과중의 하나인 것이다. 심장병과 같이, 도와주면 그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에는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많으나 혈우병의 경우는 완치가 아니라 보충요법으로 그 결과가 시원하게 나타나지 않으며 또한 치료기간도 평생인 것이다.
이러한 환자들을 위해 남의 앞에 나타나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항상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이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들의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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