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대학입시를 앞두고 혼자 초조해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우선 많은 학생들이 올해도 시험에 실패할 것이라는 믿음아닌 믿음 때문이었고 또한 그로 인해 입게 되는 상처와 아픔이 또다시 본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확산될 것이라는 예상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합격자 발표가 나면서 그 아픔들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몇몇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예년과 다름없이 말이다.
입시위주의 교육、『들어가고 봐야한다』는 식의 잘못된 교육풍조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대학입시가 일생을 좌우한다는 사고방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믿을 만한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 펴져왔다.
이땅의 많은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갈망하게된 이유나 동기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문제는 지식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러한 지식은 성 베르나르도가 말씀하시는 참된 지식의 범주인 진리를 배우고 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 의하면 지식의 근본은 생계유지나 돈벌이에 있지않다. 그것은 지혜이신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하는데 있으며、무엇보다도 그러한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데에 있다.
사실 13세기에 처음으로 유럽에서 대하들이 생겨났을 때 대학의 고등교육 정책은 인간의 질리탐구를 심화하는 것이었으며 교회의 인간봉사를 촉진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교육과정 자체나 정책은 원래의 목적에서 상당히 빗나가 있다.
철학자 훗셀은 그의 마지막 저술인 「구라파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의 제1부에서 유럽인의 극단적 생활위기의 표현으로서 학의 위기를 언급하는 가운데 위기와 극복을 그 전체적인 주체로 삼고있다. 그는 물리주의적 객관주의의 만연을 위기의 원인으로 보면서 인간사상이 자연과학주의에 젖어있다는 것、즉 객관적 진리가 이념의 옷을 입고 있음을 바라보았다. 따라서 이념화 작용의 근원이 생활세계에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이념화된 참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배우며 살아가는 데도 열심히 배우며 살아가는 데도 불구하고 세계는 쉽사리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모되지 않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세계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스스럼없이 단언한다. 그들은 세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안에서 그 나름대로 어떤 종말론적 징표를 발견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평소 존경하는 스승 신부님을 찾았는데、대화중에 그 분은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이 머리에 지식을 쌓을줄 만 알았지 그것을 마음의 지혜로 끌어들이지 모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그렇다. 그 말씀은 스페인의 유명한 사상가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하는 『정신의 뿌리는 마음 안에 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배운 지식을 마음의 지혜、곧 삶의 지혜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이 앓는 고질병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사회가 인간의식의 근원적 전통적 개념을 소홀히 하거나 부정하는 데에 있다. 의식개념의 현실적인 쇠퇴는 무엇보다도 인간개념을 거부하는 데에서 발생하였다. 세계로부터 점차 고립되어 온 인간질재의 고독하고도 유일한 이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데에 오늘의 이 세계가 처한 비극적 운명의 원인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전인적 교육과는 거리가 면 지식의 축적내지는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지 못하고、더구나 매년 30만명이라는 재수생들을 누증시키는 결과외에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있는 지금、문제해결을 위한보다 궁극적이며 근원적인 개혁이 요청된다. 다시말해서 교육 프로그램 자체로부터 그 프로그램을 보호하거나 조정하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이 사회에 눈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문제가 배우는 데에만 있지 않고、하이덱거가 주장하듯이 『배우고 존재하며 사는 데에 있다』면 우리는 더욱 합당하고 완전한 양식을 찾아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실상 이 세계는 복잡한 형식에서 단순한 형식에로 그리고 중요한 존재들뿐만 아니라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 이르기까지 실재의 전체성을 감싸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즉 세계는 통합적인 진정한 인문주의를 기대한다. 존재가 지닌 가장 심오한 가치들과 품위를 옹호하는 인문주의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선포하고 수행하는 것만이 급선무이다.
사실 참된 인문주의는 정당들의 거창한 선언이나 헌법의 원칙 혹은 교육헌창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일상적인 단순한 삶과 사유 안에서 발견된다. 즉 상호인격적 관계 안에서、일과 휴식 그리고 사랑의 삶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의 청소년들 역시 자신들이 염원하는 진정한 인생구원이 입시와 책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사와 자신이 몸담은 세계전체에 퍼져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비로소 교육의 위기는 극복될 수 있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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