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당신부로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사순시기를 맞게 되었다. 공소가 많이 있는 시골본당이므로 난생 처음 판공성사를 주기위해 공소방문을 실시하던 때였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공소가 얼마나 깊은 산골인지는 타고가던 차를 중간쯤 가다 길가에 세워둔 채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면 가히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물어물어 찾아간 공소입구에 도착하자 몇 분되지는 않지만、그래도 그곳까지 찾아준 본당신부에 대해 고마워하시는 신자분들과 반갑게 초면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한 분이 지팡이를 짚으신 채 뒤늦게 오셔서『이 젊은 양반은 누고?』라고 말씀하시며 내게 물으시는 게 아닌가. 아마 할머니에겐 웬 낯선 사람이 와서 마을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가하고 의아하게 생각되신 듯 했다.
할머니의 예기치 못했던 물음에 얼른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던 나를 대신해서 옆에 섰던 젊은 교우분이 『아 할무이 요번에 새로 오신 본당신부님 아입니꺼!』라고 재치있게 답변을 해 주었다. 내 스스로「본당신부」라고 밝히기도 곤란하고、참으로 난감한 순간에 위기를 넘긴 상태였다.
젊은 교우분을 통해 답변을 들은 할머니께선 얼굴 표정이 싹 바뀌시면서 『아이구、천주대포(천주의 대표란 뜻의 경상도식 발음)께서 이 먼 길을 오시다니요!』라고 하시며 그 자리에서 큰 절을 하시려는게 아닌가.『예 할머니 마당에서 이러지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셔서 인사하십시다』란 말로 공소방으로 모셔들였다.
공소방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할머니의 연세를 여쭤보았더니 이제 올해로 90세가 되신단다.
연세가 90이 넘는 할머니가 무엇을 배웠기에、무엇을 알기에 신부라는 그 말한마디를 듣고、이렇게 젊은 신부를 「천주대표」로 인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는 많은 지식이 없을런지 모르지만、「사제」란 한마디 말을 통해서도 천주와 곧바로 연결시킬 수 있는 할머니의 삶이 오히려 하느님 앞에 가장 진솔된 삶이 아닐까?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고 손으로 만져봐야만 수긍하려는 우리네들의 삶에 할머니의 「천주 대표」란 말은 사제로 살아가는 나의 삶에 있어서도 하나의 충격이었다.
공소판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 스스로 천주의 대표자인 사제의 삶에 얼마나 충실해 왔던가를 반문해보면서 그 할머니가 내뱉으신「천주대표」란 한 말씀이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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