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규탄하는 폭력행위는 정당한 것인가. 6월 3일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자행된 학생들의 폭력행위는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 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민주화를 위해 나름대로 투쟁해온 학생들에게 방법보다는 그 뜻에 의견을 같이해온 사람들에게조차 실망을 안겨주고야 말았다.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건이었다.
인간이 폭력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한가지뿐이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은 폭력을 선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을 가려서 행사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다. 법정에서 본능적 방어로서의 폭력이 인정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동안 학생들의 과격시위를 말없이 지켜본 시민들도 그들의 선택이 강경진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행위로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강의를 하러온 총리(서리)가 무기를 지녔을 리도 없고 더구나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지도 않았다. 강성 장관으로서 그의 이미지가 총리기용에 맞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거부의 몸짓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우선 국회의 승인이라는 절차가 남아있고 그것이 미덥지 않는다면 폭력을 배제한 의사표시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총리 서리 폭행사태를 지켜보면서 학생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지적을 해두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사회는 장유유서라는 질서가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왔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더라도 이 질서는 아직 우리 의식의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그 질서가 우리의 심성에 맞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장유유서라는 말이 고리타분하다면 윗사람에 대한 예우쯤으로 표현할 수가 있다.
그것도 지나치다면 인격 대 인격으로서의 질서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이 같은 기본질서가 학생들의 선에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아찔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학문의 최고봉에 자리한 상아탑 대학에서 말이다. 상아탑은 학문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통해 이성과 인격을 연마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이번 사건을 놓고 절망할 수는 없다.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학문탐구와 인격도야로 미래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성세대가 할일은 그들이 가는 길에 걸림돌이 없도록 해주는 일이다. 올바른 정치, 바른 사회, 정당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길만이 그들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지름길이다. 이제 서로가 자신을 돌아보자. 정당함을 추구하기 위해 폭력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말도록 학생들에게 강력히 권고하고 싶다. 기성세대인 우리의 몫은 못난 학생을 탓하기에 앞서 못난 어른에서 탈출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못난 제자를 위해 자신의 종아리를 때렸던 현인들의 지혜를 배워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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