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집 밥숟가락이 몇개인지 아는 것은 이웃간에 강력한 친교를 맺고 살았던 우리네 생활풍습의 하나라 할 수있다. 그러나 숟가락과 밥그릇이 몇개인지 안다고해서 그 집의 부부관계·그 내면세계까지는 알 수가 없다. 바로「남」이기 때문이다. 만일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만을 토대로 한 가정·어떤 부부에 관해 진단한다면 틀릴 수 있는 여지는 거의 1백%이다. ▼갈등과 혼선이 없는 가정·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과 사회는 갈등과 혼돈 속에서 계속 발전하고 성숙한다. 각기 다른 인성과 특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집단이 아무런 문제없이 굴러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사회는 인간의 인격이 파괴되고 인성이 말살되는 기계인간(사이보그) 사회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단순한 부부싸움이 걷잡으수 없이 확대되는 경우가 있다. 생활이 열린 상태였던 우리 가정제도에서 가끔 발생했던 일이다. 그냥 두면「칼로 물베기」일 수도 있는 부부싸움이 인척이나 이웃의 간섭 때문에「부부전쟁」으로 번지는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정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최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파문」사건만 해도 남이 끼어들어 긁어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모든 것을 사건으로 보고 터뜨리려는 속성을 가진 일반 언론은 교회로 볼 때「남」에 속한다. 더구나 한국 언론은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세계성체대회를 치르면서 우리교회의 숟가락을 셈할수 있는 친숙한 이웃으로 자리를 굳혀왔다. 이게 탈이라면 탈이라 할까. 교회가 자연스럽게 시간을 벌며 해결할 수도 있는 사건을 남이 끼어들어「파문」(波紋)을 만든격이다. ▼교회의 숟가락수는 셈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교회가 문제를 푸는 방법까지는 헤아리지 않은 하나의 예가 아닐수 없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읽어야만 하는 일반 언론의 한계점이다. 남이 끼어들어 판을 께버린 상황이라 하더라도 교회는 그것을 헤쳐나가는 슬기로움이 있다. 남의 단점 잘못까지도 수용하는 자세、 그것이 수세기에 결쳐 지켜온 우리교회의 장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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