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2월 15일~ 18일) 일간지들을 접한 천주교 신자들은 적지않게 놀라고 당황했으리라 짐작된다.
그것은『함세웅 신부가 월간「사목」1월호에 기고한 교회 민주화를 주장한 글이 큰 파문을 일으켜 교회 내부에서 파문(破門)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들이 신문마다 연일 보도됐기 때문이다.
우선 일간지들이 다룬 제목들을 살펴보면『함세웅 신부 기고문 큰파문、 교황청대사 인터뷰비판싸고… 파문까지 검토、 가톨릭내부서도 찬반 엇갈려 논란』이라던가 또는『함세웅 신부 기고내용논란、 주한교황청대사 인터뷰내용 비판으로 파문、 바티깐측의 파문설은 지나친 추측인듯』이라는 제목들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일간지는『함 신부 파문설은 낭설、 일단락됐던 것…언론확대보도로 재논란』이란 제목을 달고 있기도 하다.
함세웅 신부가「사목」1월호에「교회쇄신을 위한 근원적 성찰」이란 이 글은 주한 교황대사 이반 디아스 대주교가 지나해 9월 모 일간지와 인터뷰한 내용에 대한 반박과 한국천주교회의 몇가지 사항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앞서 일간지들이 달고 있는 제목들만 얼핏 보아도 순수교회문제에 대해、 그것도 벌에 대해 이미 일간지들이『파문까지 검토』『파문설은 지나친 추측인듯』『파문설은 낭설』등의 표현으로 이미 함신부에 대해 추측재판을 다해놓은 셈이다.
우리로서는 어떻게 사회언론들이 단순 추측만으로 천주교회와 함신부 본인에게 크나큰 피해와 면예 훼손들을 입힐 수 있는 책임성 없는 기사를 마구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참으로 유감스럽고 안타깝지 않을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에 함신부에 대한 파문 운운의 보도를 지켜보면서 이들 언론들의 교회에 대한 몰리해를 목격할 수 있었다. 과연 그들이 파문이란 어떤 처벌이며 어떤 경우에 가해질 수 있는가를 사전에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었더라면 그처럼 엄청난 실수는 범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언론은 함신부에 대한 이번의 파문설이『주한 교황청 대사 디아스 대주교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함신부의 반박과 이에 더해 함신부를 상징적 정점으로한 사제단의 현실참여와 교회개역이 목소리에 대한 충격적인 대응요법으로 교황 대사관측에서 흘러나온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곁들여 이 신문은『교황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이래 해 온 그의 언행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는 젊은 성직자와 평신도 그룹에서는 디아스 대주교의 논리로 볼 때 함신부의 주장을 얼마든지 편한대로 해석할 수도 있어 그같은 의도적 발언이 나올 수도 있다는 분위기』라고 덧붙이고 있다.
또 다른 신문은 함신부가 그 글을 쓰게된 이유가『지난해 평화신문의 장기파업으로 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겸직중이던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에서 가톨릭 대학교수로 전보된데 대한 소외감에서 이 같은 글을 쓰게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천주교 일각에서는 있다』는 주장도 펴고있다.
우리로서는 교황대사관측이 함신부의 파문설을 흘렸을 가능성이나 또 함신부가 전임으로 인한 소외감에서 그같은 글을 기고하게 되었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함신부의 기고문이 교황대사의 인터뷰 내용을 아무리 직접적이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더라도 대사관측이 그처럼 용종하고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함신부의 파문설을 유포했으리라고는 결코 상상조차도 할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한 사람의 사제가 신문사장직과 홍보국장직에서 신학대학교수로 전임된 소외감때문에 그러한 글을 썼다고 하는 주장은 더더욱 설득력이 없는 얘기다. 아마 그러한 생각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제가 어떤 신분이며 무엇때문에 존재하는 사람인가하는、 곧 사제의 정체(Identity)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로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따라서 일간지들이 함신부가 파문설이 교황대사관에서 흘러나왔을 것이라는 추측이나、 함신부가 그 글을 쓰게된 배경에 대한 추측 모두가 아무런 근거도 없고 사리도 맞지않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한「추측」에 불과할 뿐임을 똑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함신부의 기고문이 배포당시 교회 내부적으로 다소 논란이 있었고 교황청에서는 함신부에게 유감을 표명한 정도에서 일단락되는 기미를 보였는데 언론이 갑자기 끼어들어 파문설까지 유포시키는 바람에 이문제를 복잡하게 확대시켰음을 알고있다. 이 과정에서 교회관계자가 관여 됐는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순전히 교회내적인 집안문제에 사회언론이 개입함으로써 어쩌면 쉽게 풀어갈 수 있는 문제를 오히려 어렵게 만든 꼴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사회 매스컴들이 교회관련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보다 신중하고 정확하며 공정한 입장을 잃지말아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이번 일간지들의 보도로 인해 함신부 개인이 당한 심적·정신적 피해도 적지 않겠지만 우리 교회가 입는 피해도 결코 적지 않으리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언론들이 함신부의 기고문 가운데 참으로「교회쇄신을 위한 근원적 성찰」의 근본내용을 외면한 채 문제성있는 내용들만을 발췌、 소개함으로써 현금 한국천주교회 내에 많은 갈등과 내분이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들의 이러한 보도태도는 非가톨릭인들에게는 교회가 보수와 짐보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느니、 가톨릭교회마저도 분열의 가능성이 있다느니하는 식으로 교회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추측을 자아내게 하고 가톨릭신자들에게는 현존의 교회법이나 교계제도·교회장상들에 대한 태도 등에 혼란과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하는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고자 본인이나 언론들이 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해두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공동체의 올바른 역할수행과 더 큰 유익을 위해 존재해야할 새로운 신학이론들이 기존질서를 파괴하거나 심한 상처를 내면서까지 전개되거나 추진돼서는 결코 안된다고 본다.
어디에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교회의 민주화나 개혁도 기존질서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신학·사목·교계제도·교회행정 등 순수한 교회문제들에 대한 문제제기나 해결은 어디까지나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고 상식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일을 계기로 순수한 교회문제들이 계기로 순수한 교회문제들이 또다시 사회언론들의 입에 오르내림으로써 물의나 파문을 빚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고 자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하는 마음 간절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