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그 자체가 존엄하다. 따라서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겐 누구보다도 더 철저함과 엄격함이 요구된다. 질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질서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를 지키도록 만드는 사람들에겐 누구보다도 더 확고한 질서의식과 그에 따른 행동양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명동성당을 둘러싸고 연일 벌어지고 있는 언쟁과 몸싸움의 현장을 보면 아직도 우리사회의 공권력은「법을 곧 자신」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같은 상황은 그동안 공권력의 한계지점인 명동성당을 피난처로 삼아온 이른바 비상대책회의측과 검ㆍ경찰당국과의 신경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남 10일부터 더욱 극심해졌었다. 명동성당측이 공권력 투입을 강력히 반대하면서 대책회의측에는 15일까지 스스로 나가줄 것을 권고한 이후 공권력의 파워는 성당주변에서 눈에 띄게 강력해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바 있듯이 공권력의 수행은 법 준수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집행과정에서 모두가 범법자취급을 하는 불소함은 그 공권력의 수행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1일 원주교구 김지석 주교에 대한 공권력의 태도가 하나의 예라 할 수있다.
서로가 신경이 날카로왔다는 전제하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신분증 제시로 신분이 밝혀진 이후에 사복차림의 공권력이 보여준 행동이다.「주교면 다냐 신부면 다냐」식의 폭언은「교권에 대한 말의 폭력」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권력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공권력 수행이 중요한 만큼 교권수호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아니 교회의 입장에서는 교권수호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교회가 갖는 특권의식과는 다르다. 특권의식과 마땅히 보호되어야할 권리는 전혀다른 것이기 떄문이다. 만일 법수행 과정상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상대적인 예는 갖추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누구라도 범법자일 가능성은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누구라도 범법자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교회의 최고위 성직자일 경우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신분이 밝혀진 이후에도 인격적인 대우를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공권력이 남용되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인간적 대우, 그것은 이땅에 살고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보호받아야할 권리이다.
공권력의 남용은 민주화 사회로 가는 길목의 커다란 장애물이다. 자칫 외국어대 사건을 공권력 남용의 호기로 착각한다면 그 꿈은 일찌감치 깨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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