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부 주일학교 교사가 된지 벌써 석달이 지났다. 긴 시간들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행사 준비와 교리 준비ㆍ율동ㆍ소창ㆍ환경 정리 등으로 무척 힘들었다.
「교사」란 것이 생각만큼 단순한 직책이 아니었고, 자기자신의 감정을 초월하며 자기생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내가 어렸을 때와는 달라서 선생님이란 존재를 우습게 여기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아이들 대부분은 인사하기는커녕 빤히 쳐다보거나 위아래로 훑어보기 일쑤였다.
교사가 되기전 나름대로 아이들 세계를 상상해 보았는데 현실에 직면하고 보니 판이하게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그만둬야겠다는 마음만 굳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3학년 중에서 가장 말썽꾸러기인 민수란 아이를 교리가 끝난 후 혼자 남겨 놓고 야단을 쳤다. 너 때문에 선생님이 속 상한다는둥, 미사 시간이나 교리시간의 분위기가 흐려진다는둥 앞으로 계속 장난치고 떠들면 어머니께 말씀드려 성당에 못나오게 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민수는 -심하게 혼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고개를 푹 떨구더니 『선생님 잘못했어요. 다신 떠들지 않을께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 녀석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고 이번 기회에 선생님의 위신도 세워야겠다 생각하고는 『민수 너는 단단히 혼나야 해. 벌써 몇 번째니? 아무래도 부모님께 말씀드려야겠다. 아빠가 더 무섭지? 이따가 전화해서 민수 혼내시라고 해야겠어』하면서 모질게 말했다.
그런데 민수가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해서 그런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러더니 『선생님, 우리 아빤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불쌍해요』하면서 엉엉 우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서 민수를 꼭 안고는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면서 달랬다.
민수가 울음을 그치고 돌아갔을때 내 눈에도 눈물이 핑돌았다. 이제까지 나만 생각하고 불평만 했지 아이들에게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준적이 없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이렇게 어린 아이가 겪고 있는데 교사로서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민수가 장난치고 떠든 것은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석달이 지난 지금 나는 비로소 교사로서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 애정있고 성실한 교사가 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