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생각하면 설거지처럼 묘한 작업은 없는 것 같다. 식사를 하고 나서 느끼는 만복감, 나른한 평화ㆍ안락함ㆍ휴식을 원하는 심정과는 아랑곳 없이 지저분해진 그릇과 식탁들을 정리하구 씻고 치워야 하는 일이란 피하고 싶은 귀찮은 일이 분명하다. 더구나 드러나지도 않을 뿐더러, 창조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그러나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피하기는 커녕 여유있는 마음과 손놀림과 완벽을 요구해 온다. 급하고 바쁘게 해서도 안되고, 대강대강, 대충해치워 버리려는 마음가짐과 행동은 더더욱 맞지않는 일이다. 이럴때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일이다. 좋아하는 성가를 틀어 놓거나, 묵상기도 테이프라도 꽂아 놓고 설거지 그 자체를 살아 있는 기도의 시간으로 바꾸어 보자.
연전에 수술을 받고 누웠을 때의 일인데 수술후의 뒷처리에 관해 스탭진들에게 설명을 하던 외과 팀장 박사님의 말씀이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다.
『수술은 신속 정확,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지만 수술후의 뒷처리는 여유를 가지고 잔잔한 노래라도 틀어놓고 설거지하는 기분으로 해야 한다. 』
빨리빨리나 대강대강이 추호라도 개입되어서는 안된다는 비유의 표현이었는데 평소 후딱 해치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설거지에 대한 관념을 바꾸어 놓은 일이었다.
오늘도 우리 주위에는 이런 설거지와 같은 일을 드러나지 않는곳에서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기에 보다 나은 삶, 가치로운 삶이 영위될 수 있는게 아닐까. 가정과 이웃과 사회 그리고 우리가 속해서 있는 저마다의 공동체 안에서 언제나 한결같이 묵묵히, 일의 성공에만 열광하고 뒷처리에는 무관심해져 버리는 많은 사람들의 뒷전에서, 거창하고 드러나는 일에만 정신을 빼앗기는 많은 사람들의 그늘에서, 그래도 보다 많은 사람들은 말없이 남들이 귀찮아 하고 하기싫어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설거지를 도맡아 성실히 기쁜마음으로 해내고 있다.
드러나는 일에 나서는 많은 이들이 유형무형의 대가를 바라고 있다면 드러나지않는 많은 이들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바랄뿐이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일은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묵묵히 참고 견디며 인내하고 수용하는 넉넉한 어머니의 가슴일 때야 가능한 일이고 그 어머니의 가슴은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총의 선물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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