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하찮은 나에게 베풀어준 많은 은혜를 어찌 글로 다 표현 할수 있을까. 그러나 내 마음속에만 묻어둘 수 없어 졸필을 들어본다.
1960년 아마 국민학교 6학년 때인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계절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새벽이었다. 부산 메리놀병원 정문앞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수많은 환자들 틈에 늙고 초라한 어머니가 다 죽어가는 나를 업고 서서 수녀님이 나오시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윽고 파란눈의 외국수녀님이 나오셔서 환자들을 차례차례 흝어보고 지나간다. 그 많은 환자들을 다 수용못하니 아주 급한 환자부터 받기위함이었다. 나는 그때 장티푸스에 걸려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녔고 그 당시 의술로는 고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가망이 없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던차에 어머님이 메리놀병원에 가면 가난하고 급한 환자는 무료로 진료해 준다는 소문을 듣고 줄을 서서 뽑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이도 내가 뽑혔(?)다. 그리고 한 신부님이 종부성사를 베풀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나에게 크나큰 은총을 내리셨다. 한시간후에 내가 다시 살아난것이다. 죽었다고 밀쳐둔 내가 야고보란 새 이름으로 다시 살아난것이다. 나를 진찰했던 의사들은 정말 기적이라고 했단다. 이런 모든 사실은 내가 다시 살아난 이후에 가족들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후로 어머니는 이세상엔 오직 하느님밖에 없다며 성당에 다니게 되었고 그 어려운 문답책을 다외어 마리아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형님과 누나도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부산 서면천주교회 김남수 신부님(현 수원교구장)을 아주 가까이서 모시는 복사가 되었다.
그동안 기관지가 나빠 앓아오시던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중학교 2학년때까지는 복사, 레지오활동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그런 모든것이 서서히 깨어져 가고 있었으니…. 큰 형님이 한 직장에 다니는 비신자와 결혼을 한 것이다. 형수님이 생겼다고 좋아했던 마음은 어느새 미움으로 변화갔다. 형수님은 어머님을 원수같이 생각하고 끼니도 제때에 차려드리지 않앗다. 허기진 어머니가 불만을 털어 놓으면 가차없이 대들고 떠밀기까지 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근처쯤 오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고부간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들러가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신앙심도 점점 식어갔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월사금 안가져 온다고 손바닥을 때렸고 집에가서 돈가져 오라고 쫓아보냈다. 집에 가봤자 돈이 있을리 없었고 중간에서 놀다가 수업이 끝날때쯤 학교로 가곤했다.
성당에 가는것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학교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큰형님 혼자만의 벌이로 가족이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내수업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도 중2년까지 다니게 된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내스스로 학교에 가지않았다. 그리곤 집밖으로 나돌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나쁜친구와 사귀게 되어 나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것이다. 막내라고 귀여움을 받던 내가 가족들에게 원수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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