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빌딩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우연인진 몰라도 둘 중의 하나는 금융기관이다. 그것도 목좋은 자리일수록 증권회사 아니면 새로 짓는 은행건물이 차지하고 있다.
자기네 재정으로 적법하게 짓는 것을 누가 탓하랴 만은 바라보면 왠지 주눅이 든다. 우선 느끼기에도 무슨 돈이 저렇게 많을까 부럽다.
옛날엔 좋은 자리에 학교가 있었고 더 옛날에는 관청이 있었고 더 옛날에는 아마도 제사드리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옛 마을의 중심지인 교회가 있다 한다.
한 시대를 가름하는 척도 중 하나는 분명 건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확실히 교육보다도 신앙보다도 돈이 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그러니 모든 것의 중심은 곧 돈이 될 수 밖에 없다.
『신부님 머니 머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 예』그러니 입다물라는 소리다. 자 이러니「신망애」삼덕 (三德)의 대상은 누구겠는가. 바로 돈이다. 돈을 믿고 돈을 바라고 돈을 사랑한다. 표현이 삭막해서 그렇지 사실 얼마나 알아듣기 쉽고 이해하기 편한 말인가.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한결 같이 꾸짖는 대 목중에 하나는 바알 을 섬기지 말하는 가르침이었다.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우리는 이 가르침의 급소가 느껴지지 않는다.그저 막연히 우상숭배를 금하는 정도로 해석하고 있을 뿐 이다. 그러나 성서의 교훈을 오늘에 되살린다면 바알의 정체는 분명 배금주의(拜金主義-新 바알리즘)이라고 말해야 될 것 같다.
그렇다면 한번쯤 신(新) 바알리즘、곧 돈이 구세주라는 이 끈적한 사상이 우리 곁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돈 없으면 사람대접 못 받고 돈 없으면 신앙생활도 못한다고 공공연히 말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예언자들이 말했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과 일전을 벌였던 엘리야의 이야기도 그것을 증명해준다(열왕상18장). 그러니 이제는 교회 안에서 돈 이야기가 좀 사라졌으면 하고 주문해 본다.
신부님들이 돈 이야기 많이 한다고 한지만 사실 돈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아 나있는 성직자가 어디 있겠는가. 왜 돈인가.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서 돈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것은 옛날 표현이고 진짜는 누구든 돈을 좋아하다 보면 머리가 돌기 때문에 돈이 되었다고 한다.그래 그런지 우리 주변엔 걷 보기엔 멀쩡한데 돈 때문에 정신에 금간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금간 사람들 얘기를 좀더 해보자. 한때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란 말이 유난히도 강조되던 시기가 있었다.말이야 얼마나 근사한가.
그러나 곰곰히 생각하면 육체만 건전하면 정신도 건전하다는 속임수가 들어 있는 표현이다.그러나 돈 때문에 예사로 사람을 해치는 자들이 어디 육체적 결함이 있어서 그런가. 그건 아니다. 오히려「건전한 돈에 건전한 정신」그게 더 어울리는 말이다.
문제는 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본다. 학교생활이 끝나면 전인교육도 끝나는 우리사회에 탓이 있다고 본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교육받을 기회가 있지만 그건 모두가 돈과 연관되는 교육이다. 기업들이 큰 맘먹고 교육시킨다고 하지만 그 목표는 뚜렷하다. 교육도 투자의 일부이지 마냥 베푸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른들의 전인교육을 담당할 곳은 이제 교회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본의는 아니었지만 교회의 사람들이 땅 사기와 건물신축에 정열을 쏟던 시기와 분위기는 이제 지나가게 해야 한다.
사회정의를 위해 교회 안팎이 하나가 되었던 80년대의 물결이 더 깊은 영성으로 교육적 차원에 임해야 될 것 같다.
신자 수가 급증하고 신학생 수가 불어난다고 교회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자들이 다 교회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신학생이 다 성직자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회의 발전은 세상이 돈 힘으로만 움직여 지는게 아님을 깨달은 이들이 많아지 질 때 가능해진다.
자 그러니 돈으로 구원이 이루어 진다는 어설픈 착각에서 깨어나자. 우리는 구세주를 믿는 사람이지「돈세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목숨을 걸고 배척했던 바알 우상이 세종대왕의 옷을 비고 우리 곁에 있음을 잊지 말자. 늘 가까이 하되 빠지지 않는다. 건전한 돈에 건전한 정신이 있다. 신 (新) 바알리즘을 배척하는 슬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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