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같은 어느「일」을 가지고 보는 눈에 따라 사람들이 하는 말은 가지가지다. 중국에서 온 어느 제자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도박꾼이 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아요 바로 놀음꾼이 된 것이죠.뭐』우리는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 하였다.
『제가 백화점 그만두고 증권회사에 들어갔거든요. 증권이 도박이죠. 제가 그러니 놀음꾼 됐다는 것이지요』
그는 성실한 직업인으로 백화점에서도 유능한 사람이었다.
가정에서도 집안을 잘 다스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엄하면서도 인자한 남편이며 아버지이다.
『이번에 보너스 백배 받았어요』하는 것이었다. 며칠전 그의 어느 친구는 그가 보너스를 천배 받았다고 했다.
나는 상상할 수도 없고 또 상상해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착실한 사람이니 그 세계에서도 인정받는가 보다 여길뿐이다.
하루는 또 어떤 제자 내외가 왔다.
『선생님、저희가 미국가서 쓸려고 아파트를 팔고 반 넘게 가져가고 나머지는 친구에게 맡기고 떠났지요. 그 친구가 증권을 샀대요. 그런데 그게 상상도 못하게 큰 돈이 되었어요.
이건 제가 번 게 아니지요. 저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너무도 감사해서 성당에 가기로 했지요』
그들 내외 역시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라 아마 복이 내린 게로구나 했다. 그리고 저렇게 고마워할 줄 아는게 어딘가 싶었다.
지지난 해인가 어떤 분이『요샌 돈을 가지고도 아파트를 살 수가 없어요. 집은 덜컥 팔아버렸고 갈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하죠!』
나는 역시 의아하였다. 저렇게 수도 없는 아파트에 왜 파는 집이 없을까 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일곱채씩이나 가진 사람이 있대요』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몇 십채씩이나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기 집이지만 살지도 않으니 자기집도 아닌 그 많은 아파트를 어떻게 외우고 전셋돈을 받으러 다닐까 신기하기도했다. 정말 욕심이란 한이 없는 가보다.
그런데 어떤 노교수가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내외가 이젠 아들 세간내、딸시집 보내 남은건 달랑 둘뿐. 집이 휑하고 가꾸기도 어렵고해서 한번 아파트로 옮겨보려고 신청을 하지 않았겠오. 그런데 허설수로 해본게 나오고 말았다니까요. 우리 양주가 생각해 봤지요. 집은 있겠다、이거 당장없은 이가 먼저 들어가야지 싶드만요. 허욕 아닌가 싶어 포기하고 말았지요. 기를 쓰고 노력함도 없이 공으로 굴러드는 이런 복은 화의 근원이 될 것도 같더만 말예요. 흥흥흥』
점심을 드시면서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듬뿍 짓고 하시는 소탈한 말씀이었다. 꾸밈도 없고、또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빛도 없는 얼굴이었다.
『아이구、선생님도 절로 절로 굴러든 호박을 넝쿨째 걷어 차셨군요. 아니 그걸 잡으셨더라면 지금쯤 돈방석에 올라 앉으셨을 텐데요. 쯧쯧쯧、거참 아깝다』하는 분도 계셨다.
하루는 어떤 젊은 교수가 수심에 찬 얼굴로 『선생님、3천만원에 산 저희 아파트가 2억이 넘는데요. 선생이 이래가지고 우리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생님、전 떨리고 걱정스럽기만 해요. 이게 무슨 불길한 징조지요? 큰일났습니다』하더라는 것이다.
당장 비를 거어(피하면) 살수 있는 집이 있으니까 없는 이에게 넘기는게 옳다고 여겨 그것도 투기라고 포기하신 노교수、아파트값이 뛰는 것을 보고 국가의 경제를 걱정하여 사뭇시름에 찬 젊은 교수、남이야 병신이라건 못났다건 내게는 고귀해 보이는 교수다운 교수이다. 돈방석에 오르기를 바랐다면 왜 하필 교직을 가졌겠는가? 그들에겐 돈으로는 메꿀수 없는 「헛헛증」이 앎의 세계、정신의 세계에 있는것이다.
그리고 궁극의 목적은 인간답게 인간 노릇하고 살자는 것이다. 자기의 전공과는 딴판으로 백화점에서 증권회사에서 한 없는 부를 누리면서도 오히려 강사 자리 하나 맡겨지지 않은 자기의 현실을 못내 서운해하는 모습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나도 그의 서운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은 모든 이를 착하게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6ㆍ25의 동란을 겪었다. 죽음의 폐허에서 안간힘을 다하여 오늘의 우리를 건설하였다. 자기 딴에도 대견스럽고 신통하기 짝이없다.
갖은 못할 고생을 다했으니 하긴 좀 누리기고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주렸던 배라고 너무 허겁지겁 퍼넣다 보면 터지고 마는 법이다.
한번 눈을 돌려보자. 그래서 좀 남에게도 안살(인정)을 두자. 입맛을 다셔가며 감지거지 주린배를 불려가는 이를 보면서 스스로 배부르고 스스로 기쁠 수도 있게 점지된 게 우리 인간 아닌가? 나누어 먹고 같이 기뻐하도록 태어난 우리들이 아닌가. 내가 주리어도 아내가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기뻐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우리는 배 부르고 기쁘지 않던가? 짐승 같은 게걸스러움을 버리고 좀 더 사람답게 끌끔해질 수는 없을 것인가? 오물음의 이야기에서처럼 관밖으로 내민 빈 손이 덜렁 거려야만 다 두고 가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인가?
모든 것은 빌려쓰다 가는 것이다.그리고 내 것도 없는 것이다. 남의 덕에 벌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넉넉히 주실 땐 나누며 살라 하진 뜻이거니、붙여 살다 가는 길、서로 의지하고 서로 나누고 알뜰살뜰 사랑하다가는 것이 어떨지?
당첨된 아파트를 포기한 노교수이며 자기사는 아파트값이 오름을 보고 이 나라의 경제를 걱정하는 젋은 교수、이들 올바른 지성이 이 겨레를 그래도 버티고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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