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여정에 자양분인 성가가 다양성이 주는 혼란을 회피코자 시도된 통일작업에 의해 그 망가진 상처가 너무도 큰 것같아, 더 깊이 곪기전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지기를 강력히 소망하며 이글을 쓴다.
돌이켜 볼때 우리 가톨릭은 유구한 역사속에서 단일한 일치를 누리며 오늘에 이르렀고, 우리민족 역시 장대한 세월과 더불어 꿋꿋한 전통을 오늘에 뿌리고 있다.
순교의 피를 타고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고, 수십년을 넘어 세대를 바꾸어가며 우리심성에 가장 적합한 가사와 곡으로 우리의 영혼을 들어 올려주던 성가가 아니더라도 사회의 변혁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앞에 느닷없이 동도 아니요 서로 아닌 모습으로 나타나, 매일의 지존하신 제대앞에서, 평화와 사랑의 친교를 이루는 그 좋은 자리에서 분심을 일으키고 혼란을 주고 있는 듯하다.
누차에 지적되어 온 점들이 많이 터에 더 보태고 싶지는 않으나, 이른바 묵은 교우의 수가 적어지고 새교우의 수가 많아진 사정(事情) 등을 감안해서 과감한 손질을 한 듯한데 그렇더라도 교우들의 실정과 심정과 실창(實唱) 에의 깊은 배려가 너무 모자랐다고 여겨진다. 옛말의 뜻을 모를라 치면 지금의 교회전례서 모두를 뜯어 고쳐도 모자랄 것이요, 뜻도 모르고 부리지는 않았을 성 싶으나 옛분들이 부르는 그성가를 들으며 자라온 오늘의 세대와 새 교우들이 뜻을 몰라 부르지 못할 성가는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언어는 누가 강제해서 고치거나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세월을 두고, 갈고 다듬다가, 도태되고 생겨나며 혹은 부활하기도 하는 것을 무리하게 인위적으로 뜯어 고친대서야, 어찌 국가(國歌) 가 온전할 것이며, 저 무수한 교가(校歌) 들은 고치기에 바쁠 것이 아닌가?
우리 교회의 성가가 한개 학교의 교가보다 못한위치에 있더란 말인가? 고칠수 있는 부분이 있고,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주 오래된 성가들은 어쩌면 민요처럼 글자 하나곡조 한부분도 섣불리 손대서는 안될 우리 신앙의 고귀한 유산의 한자락이요 고유한 신앙고백임을 결코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격변기를 너무 많이 살아오면서 개선의 지혜는 잃어버리고 개악의 흐름에 습관적으로 익숙해졌으며 그 부작용은 이미 이 사회도처에서 독버섯처럼터져 나오고 있다.
전통이 단절된 사회, 바로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우리 교회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
상한 갈대를 부러뜨리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불어버리시지 않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전통을 보존하며 앞길을 열어가는 등대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야 할것이다.
등대지기의 소임은 어둠을 밝히는데 있지 등대가 주는 아스라한 추억을 빼앗는데 있지않다.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사업으로서의 통일성가집 편찬이 공경하올 주교회의의 결의는 존중했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교우들에게서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송두리째 앗아버린채 깊은 회한을 남기고 아직도 미완의 장으로 남아있음을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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