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해 10월「그리스도、우리의 평화」라는 대주제 아래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성대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치룬지가 겨우 5개월여 밖에 안되었건만 88서울올림픽이 그러했듯이 우리들은 세계성체대회를 너무 빨리 잊고 있다.
성체대회의 본연의 뜻인、예수님께서 최후만찬 때에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성찬례를 기억하고 새롭게 재현하고자 활발하게 펼쳤던 「한마음한몸운동」이 오늘날 용두사미의 추악한 몰골로 변질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헌혈 및 장기기중ㆍ입양 및 결연 、헌미(헌금)운동 등등이 있었으나 유교사상의 뿌리를 감안할때 가장 손쉽게 할수 있는 운동의 후자의 헌미운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순절이 되면 각 가정마다한 숟가락의 쌀을 모아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던 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교회의 아름다운 풍습의 하나기 떄문이다. 그야말로 우리세대에 다시 보기 힘든 선택이었다.
그 좋은 「아이디어」를 창출해낸 우리 가톨릭은 시작은 거창하게 펼치고 불을 댕겼으나 소기의 목적에 훨씬 못미치는 결과였을뿐 아니라 작금은 아예 부진하다 못해 낌새조차 못느낄 판국이다. 또한 우리들 뇌리에 남아있는지 조차 분명치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능력、조직력、인력、홍보매체와 더불어 우리의 일사불란한 체계에 틈이라도 생겨서 신자들이 태업(?)하고 비협조적이었을가? 모르긴 하지만 담당부서의 무사안일한 소극적인 사업추진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라고 보고 싶다.
그 많은 가톨릭의 홍보매체를 왜 활용못했으며、권위있는 일간지와는 어찌하여 제휴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버리지못한 폐쇄 속성인가、겉으로 드러내지않는 전통 때문인가、조용함이 최선인줄 착각했음인가、참으로 안타깝고 또한 아쉬움이 태산같이 남는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고 철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전개했어야 했다.
쌀이 남아서 쌀막걸리를 빚을만큼 쌀소비를 권장하는 요즈음에 신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을 터이다
그 결과 사랑의 헌미와 헌금등의 결실을 나라안의 가난한자、소외된자、청소년가장 등을 도울 수 있었을테고 나라밖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다소나마 구제할 수 있었을 것이고、우리교회의 위상을 드높이는 첩경이자 복음전교의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지부진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개신교에서 그들의 것으로 소화 정착시켜 꽃을 피우고 있음을 본다
같은 형제로서 뜨거운 성원과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과연 우리의 「한 마음 한몸 운동」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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