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폐막된 후 얼마 후였다. 10월 말쯤으로 기억되는데 독자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은적이 있다. 그 내용인즉 일반 신문에서 우리교회의 이름인「가톨릭」을 「카톨릭」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일간지에 항의하였더니 담당 기자의 대답은「어쩔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가톨릭신문사」가 이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주문이었다.
세계성체대회 개막 이전 자연스럽게 세계성체대회 준비과정이 신문, 방송의 보도를 타게되면서 가톨릭의 이름이 아닌「카톨릭」의 자주 등장하곤 하였다. 틀린 이름이 한두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되다보니 눈에 거슬릴 수 밖에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방송의 경우는 별로 느낄 수 없으나 신문의 경우는 그 정도가 정말 심각하다.
일반 신문들이「카돌릭」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국어연구소가 발행한(1988년 8월30일)「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카톨릭」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교부 고시 제85-2호(1986년1월7일)「외래어 표기법」에는『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는 기본원칙이 있다. 따라서 일반 신문들이「카톨릭」을 고집하는 것은 안일한 자세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교회의 정확한 이름은「가톨릭」또는「천주교」이다. 이 이름은 1932년 간행된 가톨릭지도서(Directorium Catholic)에 등재되어 있다. 이미 60년전부터 공식화된 이름이다.
그 이전에는 서학(西學)、천주학(天主學)·천주교(天主敎), 카톨릭, 가톨릭, 카토릭 등 으로 혼용되어온 것을「가톨릭」과「천주교」로 통일시킨 것이다. 이같이 60년동안 일관되게 사용해온 우리교회의 이름이 언론사의 기준에 따라 달리 불려진다는 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배경을 몰랐을 때는 이해가 되지만「카톨릭」이 아나라「가톨릭」으로 불러달라는 특별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 외면하고 있음은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난해 3월 세계성체대회준비위원회 홍보분과는 각 언론사에 가톨릭의 표기 및 방송을 정확히 하여달라고 공문을 통해 요청한바 있다. 물론「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는 문교부의 외래어 표기법 기본 원칙도 상기시켰다.
이 공문이 나간후 일부 신문에서 시정 노력이 일시적으로 엿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 지면안에서도 서로 다르게 표기하는 등 그야말로 중구난방、일관성이나 정성스러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신문에서 채택하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 기준에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관성의 모순을 범하고 있으나 어쩌다 선심을 베풀 듯 한두번 제대로된 가톨릭의 이름을 붙여주는 신문은 그나마 고마운지도 모른다. 거의 대부분의 신문들은 무신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카톨릭」을 고집하고 있다. 이 공문이 제대로 책임자에게까지 접수되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 공문이 각 언론사에 보내진지도 만 1년이 지났다. 이름을 정확히 불러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단 한번의 협조공문 발송으로 끝난 교회측의 대응방법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공문을 보낸후 반응이 있는지 없는지 면멸히 분석한후 2차、3차의 협조요청을 달리 나타났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 차례의 공문을 보내고 나서 이를 끝까지 관철시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부족이 결국「카톨릭」이라는 허명을 신문에서 고치지 못하는 큰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1984년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을 계기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인 한국방문이 결정되자 언론의 관심이 지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언론들의 가톨릭에 대한 이해도는 관심에도 비해 상당히 빈약한 편이었다.
가톨릭이란 이름 자체도 외래어지만 교회 통상 용어 가운데는 외래어도 많고 이래하기가 쉽지 않은 전문용어 또한 수두룩 하다.
이러한 실정에서 모 방속국의 신자 아나운서가 보여준 노력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신앙대회와 교황방한 행사 보도에 있어 용어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스스로「방송용 가톨릭용어집」을 만든 것이다.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여 만든 이 용어집은 비록 작은 팜플렛 규모이기는 하지만 그 정성과 노력은 정말 값진 것으로 평가할만 하지 않은가. 언론들이 이 같은 관심을 보여주기에 앞서 교회당국의 대외홍보에 대한 자세가 보다 적극적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점 하나 있고 없고가 뭐 그리 큰 문제냐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기왕에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시정을 요구한바 있는 우리 교회의 정확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이제는 주교회의가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회 측에서 보낸 적이 있는 지난해 협조공문 내용을 다시한번 상기시켜주면서 주교회의 의장 명의로 각 언론사에 협조요청을 한다면 상당한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한차례의 시도로 그칠것이 아니라 개선상태를 계속 점검하면서 시정될때까지 반복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언론사들은 똑바로 가르쳐준 남의 이름을 계속해서 잘못 부르면서 변명만을 늘어 놓을것인가. 참으로 딱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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