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음악의 역사는 우리교회역사 만큼이나 길며 우리 교회와 더불어 동반자로 살아 왔다. 구약때부터 성음악이 있었고 신약시대에 들어서는 많은 성음악 교부들에 의해 발전되어 수많은 성음악이 작곡되어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들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좋은 유산이 있으므로 참으로 행복하다.
우리가 이런 유산이 없었던들 이렇게 메말라가는 오늘날의 신앙생활에 무엇을 통하여 하느님께 대한 애정을 흠뻑 느낄 수 있을까. 교회음악은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준성사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아름다운과 어지심을 우리는 음악을 통하여 더 절실히 또 더 깊게 느낀다. 간단한 경험으로 성기없는 미사는 재미가 없다. 즉 성가없는 미사를 통하여 하느님은 재미없는 하느님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 알게 모르게 성가의 혜택을 입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비추어볼 때 교회음악은 우리가 사랑해야하며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할 숙명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들은 교회음악을 냉대와 무관심으로 대하고 있다. 조상때부터 가난하고 살기에 바빠서 성음악까지 관심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있었겠지만, 교회음악을 통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감정 표현이 너무 메마른 것 같다. 남성신자들이 더 그렇다. 거의 대다수 본당성가대를 보면 그렇다. 미안할 정도의 남성단원들이다. 겨우 연명만 하고 있는 꼴이다. 남교우들에게 사정하며 성가대에 들어오라고 권유하면 어쩌면 그렇게 통일된 대답이 여러입에서 나오는지 신기하다. 『음치라서』, 『시간이 없어서』라 한다. 필자는 그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할 일 없는 즉 요즘 유행하는 속된말로『별볼일 없는 사람이 성가대에 나와서 많은 시간을 떼우고 있지않다』고. 하느님에게 받은 가창의 소질을 술집에서나, 또다른 곳에서나 소비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오롯이 되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도 요즘은 교회음악의 활성화와 발전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매주 받아보는 가톨릭신문 기사에 의하면 자주 성가발표회와 감상회세미나도 종종 열린다. 참 다행스런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본당단위의 성가이다. 본당단위의 성가대는 참으로 한심하다. 참석하는 청중수가 보잘 것 없다. 그 나름대로 매주 몇시간씩 수고한 연주자들에게 얼굴이 붉어진다. 본당의 크고작음에 관계는 있겠지만 겨우 청중수가 백명안팎이다. 그래도 필자는 절망하지 않았다. 필자같은 나이 또래는 열손안에 드는 정도이지만 청소년의 수가 거의다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개운치않다. 전전긍긍하여 최소인원만 모은 남성단원들이 연중 주일 창미사성가대에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수적으로 심하지 않으나 여성측도 마찬가지다.
본당차원에서부터 교회음악을 장려시켜야 할 것이다. 많은 본당중 몇몇 본당을 제외하고는 사목자들이 교회음악에 대해 무관심하다. 또 예산도 그러하다.우리보다 역사가 짧은 개신교가 부럽다.
우리가 사랑하고 발전시켜야 할 미사곡들을 그들이 더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교회음악 출판 사업도 우리보다 한 수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많은 교회음악악보와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비교도 안된다. 우리는 겨우 몇권의 교회음악 악보만 출판되어 있다. 그나마 불허복재의 금칙조항을 위반하여 가며 단 한권의 원본으로 수십권을 복사한다. 필자는 그들 출판업자가 재정상으로 얼마나 버틸지 걱정된다. 필자는 악보확보를 위해 약현성당에 위치한「서울대교구 종교음악연구소」를 몇 번 찾은 적이 있다. 담당자는『책꽂이에 저렇게 많은 악보를 예산을 써가며 인쇄해 놓고 몇년이고 손님을 기다려도 어쩌다 한 두권만 판매된다』고 불평을 한다. 다량의 사본을 만들기 때문일까. 담당소장도 지쳐 버릴정도라고 한탄한다. 이미 인쇄된 악보도 판매되지 않는 형편에 다시 예산을 써가며 인쇄할 수 없다고 한다. 참 안타깝기만하다. 우리교회가 교회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허복재의 금칙조항을 지켜나갈 수 없을정도로 가난한지. 우리는 선조들의 유산인 교회음악을 사랑하고 발전시켜야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우리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누가 우리를 사랑해 줄는지. 우리가 사랑해야 사랑의 결실인 좋은 작곡도 나올 것이다. 우리는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한다. 그래야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일선사목자들의 뜨거운 애정과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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