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에서 근무한지 4개월쯤 되었을 때 신축공사장 5층건물에서 건축용 파이프가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고 이때 파이프가 떨어지며 내 등을 쳤다. 난 기절했고 동료들이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검사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약간의 타박상만 있었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하느님이 나를 깨닫게 하시려고 기회를 준것같다. 그러나 나는 깨닫지 못했고 하느님은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그런일이 있은지 약 2개월 후에 현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현장소장이 와서 지금 신부님 한분이 해외근로자 사목차 와 계시니 천주교 신자는 지금 숙소로 가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참! 나도 천주교 신자인데…!』하고 망설이다가 잠깐 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기로 했다.
그리고 5~6명의 동료와 함께 현장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다른 현장 동료들도 제법 많이 와 있었다. 신부님은 보이지않고, 안내하시는 분이 『지금 신부님이 고해소에 계시니 한분씩 들어 가십시요』라고 했다. 고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여태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이 몸을 떨게 했다. 드디어 내차례가 되어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까, 한 내무반 가운데 신부님이 앉아계셨다. 신부님이 앉으라고 했다. 난 칸막이가 있는줄 알았다가 막상 마주보게 되니, 감히 신부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채 더듬더듬 지나온 사실을 대충 말씀드렸더니 『하느님이 형제를 다시 불러주셨으니, 다시는 하느님을 배반하지 말고 참된 신앙인이 되라』하시고 아내를 개종시켜 혼인성사를 받으라는 보속을 주셨다. 고해를 하고 나오니 기분이, 아니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이 붕 뜰 것 같이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고국에 가기만 하면 꼭 아내를 개종시키리라 다짐하며, 아내와 아이들 손을 잡고 성당에 가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미사가 시작됐고 성체를 모셨다. 「아! 얼마만에 모시는 성체인가!」눈물이 핑돌았다. 아니 눈물이 흘렀다. 『주님! 다시는 이 죄인이 주님곁을 떠나지 않도록, 지금 이순간을 항상 맛볼수 있도록 단단히 묶어주십시요』 그후 나는 근로자들 스스로 만든 공소에서 함께 기도도 하고, 일요일은 쿠웨이트 거주 외국인 성당에 가서 미사참례도 하며, 신앙인다운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막내 처남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큰딸 준미가 간질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고, 아내도 충격을 받아 심장판막증으로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큰딸 준미는 4살 때 외할머니댁에서 지낸적이 있었는데, 외삼촌이 준미가 울고 말을 안듣는다고 얼마나 혼을 냈는지 그때부터 잘 놀라고 경기를 하게됐다. 「크면 괜찮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간질병이라니!
흔히들 간질병은 기적이 아니고선 고치기 어렵다고 하는데 내딸이 그병에 걸리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일할 의욕도 나지 않았다. 그런 나날속에 드디어 귀국일자가 되어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아내가 마중나와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나를 끌고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울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동료들은 무척 기쁜지 웃고 떠들어 댔다. 그러나 우린 그렇지 못했다. 실감이 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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