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숙모님은 서울 토박이시다. 서울서 나서 육순을 절반도 더 넘긴 세월을 서울에서만 살고 계시다. 그런 숙모님이 제주도 토박이인 나만큼도 서울지리에 밝지 못하시다.
우리 숙모님은 좀 심한편이지만 63빌딩을 서울 사람들은 그저 쳐다보며 지나치기 십중팔구겠지만, 어쩌다 서울 구경간 시골사람은 기필코 올라가 보려고 한다. 고백하건대, 제주도의 그 유명한 관광지들의 대개가 내게는 「제주도의 63빌딩」이다.
제주도에서 나서 오십줄을 눈앞에 둔 나는 신혼부부들이 2박3일 일정으로 둘러보는 제주도의 관광지를 아직 다 가보지 못했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공연히 읽을 흥미를 잃어버리는 심술이 나한테 있다. 그러나 제주도 풍물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그런 반발심리에서라기 보다는 게으름 때문이다.
나도 해외여행 같은걸 나가면 제주도에 오는 신혼부부들처럼 한군데라도 더 보려고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편이다. 동행들이 쇼핑하는동안, 그 시간이면 한가지 풍물이라도 더 보겠다고 혼자 떨어져 나와 싸돌아 다니다가 길을 잃고 혼난적도 더러 있다. 그러나 동네처녀 값치지 않는다고 고향의 것은 보고싶으면 언제라도 볼수 있으려니하고 게으름을 피다보니까, 남들은 벼르고 별러 비싼돈 쓰며 다녀가는 제주도를 정작 나는 못보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 나의 게으름은 고향을 끔찍이도 아끼는 내 주위 동료들로부터 핀잔을 듣게한다. 그럴때 나는 미당(未堂)의 시한수로 겸언쩍어지는 대목을 면피하고는 한다.
「바다속에서 전복따 파는 제주해녀도/제일 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물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
미당의 저 갸륵한 해녀가 낭군을 위해서 가장 좋은 전복은 바다 깊은곳에 남겨두듯이, 나는 훗날 더 큰 감동을 느끼기 위해 제주도를 미지의 세계로 남겨 두는 거라고 변명한다. 그러니까 나의 게으름은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관심이 너무 커서 그렇다는 것이다. 궤변이다.
그러나 아닌게 아니라 그런 늑장 덕분에 이섬에서 나서 사십 수년을 살아온 나에게 미지의 제주도가 갑자기 나타나서 가슴 철렁하는 감동을 던져 줄 때가 아직도 있다. 「산굼부리」분화구 위에 섰을때도 나는 그런 경험을 맛보았었다. 그때 전신을 압도해 오던 「형이상학적」황홀감을 나는 잊으수가 없다.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가로질러 서귀포쪽으로 넘어가는 숲속 포장길(고약하게도 도로명이 「5ㆍ16도로」이다)을 달리다가 3분의 1쯤의 지경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시야가 확 트이는 평야가 펼쳐진다. 그냥 평야가 아니다. 수많은 새끼화산(子火山)들이 군란을 이뤄 멀리 가까이 올망졸망 서서 손님을 맞는다. 어미산(母山)이 대폭발할 때 이런 새끼화산들이 사방에 흩어져 생긴것으로 백록담을 중심으로 그 수가 삼백예순개나 된다고 한다.
여행이 가는 도중의 느낌이 중요하듯이, 경승의 감상은 이런 주변과의 콘트라스트를 음미할수 있어야 하리라. 여행은 막상 목적지에 닿고나면 좀허탈해 지는것이 나의 경험이다. 그래서 골치아파하는 친구에게 여행을 권할때도 나는 어디를 짚어 가보라고 하지 않고 막연히 「어디로 여행이나 떠나 보시지」한다.
나의 제주도 기행도 대개는 발길 닿는대로 가다가 만나는 식이다. 산굼부리와의 조우도 그랬었다. 「굼부리」는 분화구라는 뜻이다. 「산굼부리」는 분화구를 가진 몇개 안되는 새끼화산 가운데 하나이다. 분지안에 호수가 있는 백록담은 모를리가 없겠지만, 한덩어리 거대한 바위로된 성산일출봉의 날카롭고 장엄한 분화구도 못지않게 볼만하다. 그러나 「산굼부리」의 아담한 분화구가 나는 가장 정이 간다.
내가 찾았을 때는 마침 저녁 어스름께여서 산 그늘진 분화구 안은 「명상적」 정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경사가 느리고 밋밋한 구릉을 올라 위에서면 움푹 패인 분지 안은 기암과 짙은 숲이 병풍처러럼 둘러섰다. 바닥은 널다란 억새밭이다. 눈을들면, 이 일대 자화산 군락이 한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직선거리에 성산일출봉이 저녁노을에 젖어 흔들리고 있다.
분지를 건너오는 바람이 오싹할 정도로 서늘하다. 이 바람은 사철 한라산에서 바다쪽으로(바다로부터, 산쪽으로가 아니라) 부는데, 한여름 땡볕 아래서도 이렇게 생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깊은 분지를 건너오는 동안 바람속의 지열이 식어버리기 때문일 거라고 어설픈 추리를 해본다.
넓은 고운 잔디밭에 주저앉아 꿰차고간 소주병을 기울이는데 저녁귀가 한 산꿩의 울음소리가 분화구 깊은곳 숲속으로부터 긴 여운을 끌며 들려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