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죽은 딸을 슬퍼하면서 난곡 선생은 그 딸의 묘지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길상산(吉祥山) 병좌(丙坐)벌에 묻힌 것은 전주 이건방의 딸이다. 이 애는 어려서부터 곱고 순해 어미를 번거롭히지 않고도 알것을 알았다. 할머님이 연세많고 편찮으셔서 때없이 오한이 나고 열이 나셨는데 곁에서 모시면서 알맞게 아픈데를 주물러 드리고 가려운 데를 긁어 드려 할머니가 몹시 귀여워하셨다. 언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며느리에게 말씀하시기를「요게 제법 잘 섬겨、네가 못 당할걸!」』 이 몇줄 글로도 우린 그 어린 딸이 얼마나 착하고 지궁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난곡 선생의 부인 임씨(林氏)는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바느질, 다회치기, 반찬 만들기, 간맞추기로부터 빨래하기, 방아찧기, 맷돌질하기까지도 일손돕는 노비들과 뒤섞여 하도록 하여 잠시도 그 딸을 쉬게하질 않았다.
그럼에도 음식인 옷가지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형제보다 뒷전으로 돌리면서『너는 계집애니 먼저 할 수 없다. 그리고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즐거이 여김은 하늘의 도(道)니라. 너 위해 오늘은 괴롭더라도 자라서 훗날 즐겁게 사는게 낫지 않겠느냐? 만약에 그렇지 않고 오늘은 편안타가 훗날 괴롭게 산다면 그 어려움보다야 낫지 않겠느냐?』
그래서 나이 열다섯에 죽기까지 물 긷기며 방아질을 부지런 부지런히 하느라고 손은 터지고 발엔 얼음 박히고 힘겨운 일에 마디는 뒤통그러질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그 몸엔 솜이며 깁의 다사로움을 걸친 적이 없고 감미롭고 앙그러진 음식맛을 그 입은 알지 못했다.
죽어 염을 하게 될때에도 노닥 노닥 기운 옷이나마 그 몸을 미처 가리우질 못하였다.
생전에 늘 그 어머니의 노고를 스스로 대신하면서『제가 이걸 못해내겠어요? 어머니는 너무도 당신을 돌보시지 않으니…』하였고、먼길을 떠났다가 한이틀만에 돌아오는 아버지를 반기며 차마 곁을 떠나지 못했다는 딸.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로와 뉘게도 싫은 소릴 들은 일이 없었다는 이 아이.
사남매의 고명딸이건만 늘 형제보단 뒷전으로 돌려졌고 또 며느리와 고르게 하기 위해서도 그는 늘 뒷전으로 돌려졌고 스스로도 실 한오리 먹을 것 한톨이라도 올캐와 같이 나누길 원했지 저만 슬며시 독차지하길 꺼렸으니 그녀에게 유별나게 갈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의 일을 도와드리는 비복에게도 그녀는 양보해야 했고、그 부모가 좋아하는 이웃에게도 고루 나누다 보니 그녀에게는 차지가 거의 없었다.
그 아버지는 어느 종이나 거지보다도 딸에게 더 박하게 하였음을 못내 슬퍼하였다.
난곡 선생의 부인 임씨는 서씨(徐氏) 부인의 외동딸로 곱고 착해서 부모가 몹시 사랑했건만 서부인의 성미가 무서워서 언동을 꼭 예절답게 하도록 하였으며『어려서 부모에게 어리석게 군 것은 으레 시집가서 시부모에게 미련 떨 것이니 이래서 쓰겠는가』하여 매섭게 가르쳤던 것이다.
이리하여 서부인이 임부인을、임부인이 이녀를 안살없이 가르쳤으니 딸의 교육도 이렇게 대대로 내림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째서 이들은 이렇게 매섭게 가르쳤던가?『내가 만약 죽지않고 살기만 했다면 가난 속에 자라서 갖은 괴로움을 갖추 맛보았으니 네 뜻은 그 덕에 꿋꿋해지고 그 덕에 넌 더욱 현철해졌을 터이고 말고…』
우린 이 말씀에서 딸의 뜻을 꿋꿋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그렇듯 피나는 훈련을 수도자처럼 시켰고…고통을 겪어내는 동안에 타고난 어짊이 더욱 완성되기를 바라서였음을 알 수 있다.
계층이 분명했던 시대에 그 층아를 두지않고 노비와 되섞이어 딸을 매서운 노역으로 시달리게 함으로써 남에게 봉사하고 자기를 낮출줄 아는 마음을 길러 주었던 그 어머니의 현철함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진다.
요즘은 예전보다 생활이 넉넉해지고 아이들의 수도 줄어서 기껏해야 둘이나 하나니 다잡아 가르치기보다는 얼르고 비위맞추기에 어른이 한결 바빠졌다.
『겨우 저것 하나니 뜻대로 받아줘야지 호되게 할게 뭐있어! 자라면 어련히 알아서 사람 구실할라고!』
손님이 와도 제 상을 먼저 여느때처럼 차려주지 않는다고 마루를 쿵쿵 구르며 화를 내는 아이가 있어도『그래 그래 엄마가 너무 바빠서 그랬구나. 자 어서 너부터 먹어라』하면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맨먼저 아이에게 공양하는 어머니도 있게 되었다.
그러기에 그 아이가 자라서 어미가 되었을때는 어린 것이 남긴 찌꺼기도 겂없이 쓰레기통에 쏟는 것을 보고도『그래 그래 어미가 네게 찌꺼기를 먹인 적 없으니 어찌 네가 그런 찌꺼기를 그렁그렁 먹을 수 있겠니!』하고 두겹으로 싸주는 어미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길리운 아이들이라 꼭 저만 알지 남을 모른다.
나눌 줄도 모르거든 하물며 희생할 줄을 알겠는가?
너무 떠받들지만 말고 때로는 조금씩 다잡을 줄을 알아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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