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계절인 7월은 방학과 더불어 피서철이 시작되어, 산과 바다와 들을 찾아 인간은 자연속에 안겨들기를 원한다. 뙤약별 아래, 한그루 나무 그늘 아래 몸을 숨기고, 또 더위를 피하여 바닷물에 몸을 담근다. 이처럼 고마운 자연이 없다면 여름 휴가철 우리 인간은 어디에 서 있을것인가! 가만 생각해 보면 새삼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쉼터를 제공하는, 나아가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돕는 자연에 경이를 느끼지 않을수 없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친숙해질수 있는 여름은 또 한편 가장많이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여 그들을 고통과 신음속으로 몰아넣을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창소질서 보존과 완성을 위한 공청회」의 기조연설에서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자연파괴의 근본적 원인은 내면에 깊이 박혀있는 죄(罪)의 뿌리인 인간의 오만과 탐욕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바꾸어 표현하면 곧 인간이 이제는 자연앞에서 형제관계의 입장으로 돌아가 겸손과 가난함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라 하겠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가지고 또 가지려 들고, 채우고 또 채워도 끝이 없는 마치도 밑빠진 독과 같은 모양이다. 이러한 탐욕은 우리 내면의 소유본능과 파괴본능을 끌어내어 자연을 훼손, 파괴시키게 한다.
사람 몸의 수분이 70%이 듯이 지구의 70%도 해양이다. 그런데 요즘, 인간양심이 죽어가는 때문인지 물조차 죽어간다.
신문을 보니 공해배출업소의 20%가 폐수를 함부로 방출하다 적발되었다 한다. 그것도 굵직한 대기업체가 무더기로 그 이름에 올랐다. 불과 몇달전, 대구 페놀 유출사건이 온통 나라안을 흔들어 놓았는데, 그런 까닭으로 서울에서는「대구 여성과는 결혼을 하지 말라」는 유행어까지 떠돌 정도였다(그것은 그러한 독극물을 마시고 정상아가 태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뜻이라 한다). 환경처가 아무리 기업체를 대상으로 폐쇄명령과 개선시정명령을 한다지만, 무엇보다도 기업인들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국민의 생명이야 내가 알바 아니며, 자연훼손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대기업들이 처신한다면 이 나라는 어찌 되겠는가?
생물학자 토마스 러브조이(Thomas Lovejoy)의 말을 기업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환경보호를 위한 투쟁은 1990년대에 승리나 패배로 결판이 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세기말이 되면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이제는 인간은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 집단의 편의에서 교회가 생태학자의 주보로 선언한 성 프란치스꼬의 가난한 삶을 배워야 할것이다. 프랑스의 영성가인 루이 라벨(Louis Lavelle)의 표현을 빌면『프란치스꼬는 자연이 부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자가 자연을 부패시겼다고 보고 있다』고 하였다.
모든 피조물은 선(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창조 되었기에 자연은 선이다. 자연을 부패시킨 인간의 자란 바로 오만과 탐욕인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그의 삶에서 유난히도 겸손함과 가난함을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추종하였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피조물을 대하였을때, 모든 피조물은 그에게 형제자매였으며 사나운 늑대까지도 친구가 될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자연은 하느님의 현존(現存)을 반영하는 거울이며, 그분께로 이끌어주는 하나의 계단이었다. 그가 소유욕에서 벗어났을 때 그는 비로소 자유와 경이와 찬양과 감사를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사실 인간은 단지 순례자의 모습을 하고 세상의 관리자로서 또한 그분의 청지기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탐욕의 눈을 가진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세계를 단지 의식주를 제공한다는 실리적(實利的)인 관점과 무작정 착취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생물이거나 무생물이거나 모든 피조물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과 피조물의 동류의식(同類意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오늘의 시대에서 우리가 그분에게 먼저 배워야 할것은 청빈이다. 루이 라벨은 프란치스꼬의 정신 속에 담김 청빈(가난)을 일컬어『모든 피조물은 사랑받아야 한다. 단 사랑으로 인하여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을 금하는 청빈』이라 하였다. 사랑하되 소유하지 않음은 관조하는 것이다. 사랑에 사욕이 없음을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참사랑에도 소유가 없다.
소유는 인위자연(人爲自然)을 만들고, 존재(存在)를 자꾸 파괴하기 때문이다. 소유의 본능에는 탐욕이 있고 파괴의 본능에는 오만이 있다. 그러므로 소유와 사랑의 관계는, 소유는 사랑의 결과가 아니고 마지막 따라오는 탐욕의 유혹이다. 한송이 아름다운 꽃을 볼때 어떤 사람은 꺾어 가질것이고, 어떤 이는 뿌리채 뽑아가고, 또 어떤 이는 바라만 보며 마냥 즐거워한다. 이처럼 소유의 욕구가 줄어들수록 비례하여 존재의 의미는 깊어진다.
여름 휴가철, 우리는 자연을 소유하려 하기 보다 사랑해야 한다. 또한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제 인간중심적(人間中心的)이고 실리적(實利的)인 눈으로 보지 말고 형제관계로 바라보아야 할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그들 자체내에 인간 편리나 불편에 관계없이 고유한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로 창조주께 영광을 드린다.
이 무더운 여름 자연과 벗할때 태양의 노래를 부르며 성바실리오(330~379)의 자연을 위한 기도를 한번 드려보자.
『오 하느님, 모든 살아있는 것들, 우리 형제들인 동물들에 대한 동료애를 우리 마음속에 확장시켜 주소서. 당신은 우리에게 이땅을 주셨듯이 그들에게도 이땅을 집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인간의 드높은 지배력을 행사하여 찬미의 노래로 당신께 올라갔어야 할 이땅의 노래가 고통의 신음소리가 되었음을 우리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그들이 우리들 만을 위해서나 아니라 또한 그들 자신과 당신을 위해 살고 있음과 그들도 삶의 감미로움을 사랑함을 우리가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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