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가 다 되어도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시간에 학교로 찾아갈수도 없어, 애간장을 태우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바로 벨소리가 들렸고 난 반사적으로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동생은 초췌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현관앞에 서 있었다.
『누나! 난 하느님의 존재를 믿을수 없어. 왠지 자꾸 의심이 나고, 신부행을 결정한 내 삶에까지도 의심이 생겨 어떻하지?』갑자기 내게 던진 동생의 질문이었다.
난 한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동생을 바라보았고, 동생의 눈빛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갈등과 유혹속에 있는지 짐작이 갔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여지껏 사제성소에 흔들림이 없던 동생에게서 들은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이럴때 바로 난감하다는 말을 쓰나보다.
누구나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 어떠한 몫으로 살아가든 살아간다. 이 삶의 몫 중에서 자세성소는, 주님의 안배하심 없이는 결코 지켜질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가족들은 한마음으로 동생을 도와주고 이해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다음날 동생은 야간자습만 하고 왔다며 10시경에 돌아왔다. 난 간식을 조금 챙겨 동생방에 들어갔다. 그리곤 어렵게 조심스러이 말을 꺼냈다.
『성소는 거창한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마음에서 출발해서 참사제로 삶을 마치는것. 그것이 바로 사제성소가 아닐까 싶어. 네게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고통스러울때 어떠한 큰 느낌같은 것이 올것이라고 착각하지는 말아라』
말을 마친 나는 물끄러미 동생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왠지 이같은 문제가 비단 우리 가족의 문제만은 아닌것같았다.
모든 고3들과 학부모들이 앓고 있는 열병같았고, 우리들의 미래들이 얼마나 지쳐있고 그들의 마음이 진로선택이라는 기로에서 황폐해지고 있는지 잘알수 있을것 같았다.
수험생의 주장은 무시한채 부모라는 팻말로 의견을 무시하는 일이없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한다면 입시에 지쳐있고 진로선택에 있어 갈등하는 모든 수헙생들에게 참으로 값진 삶이 열리리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시제성소를 지키려는 예비신학생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끊임없는 기도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밤 새벽녘에 동생의 방을 찾았을때 작은 숨소리가 어둠속에서 나지막히 들려왔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듯 이제는 그 소리가 평화스럽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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