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온 생활습성을 미루어 볼때 「촉감문화」(觸感文化) 속에 살아 왔고、지금도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음을 발견 합니다.
한사코 「만지며」살아 왔다는 말입니다. 기도할때 손바닥을 싹싹 비비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촉감을 통해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귀여운 아이를 보았을땐 손쉽게 손이 갑니다. 심지어 귓밥을 잘근잘근 물던지 볼을 깨물어서라도 기어히 울리고 맙니다.
지극한 사랑을 깨물어서라도 드러 냅니다(그래서 조선의 아이들은 곧 잘 퍼운다고 말하는 서양사람도 있고). 싸전에 가서 쌀을 살때나、하다못해 왕소금을 살때라도 한두알을 톡톡 깨물어 맛을 봅니다. 혀로 만지는 모습이죠.
옷을 살때도 먼저 만져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만져서 느낌이 와 닿지 않으면 일단은 불합격 판정이 내려집니다.
지금도 혼수감을 파는 가게에 가노라면「때받이 천」이란것이 따로 있습니다.
우선 만져 보라는 것입니다. 젓갈을 살때도 예외는 아닙니다.
차례로 맛을 봅니다. 역시 혀로 만지는 것입니다. 독립기념관의 밀납인형이 구경꾼들에 위한 두번씩 수난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저마다 만져서 본의 아니게 곰보딱지를 만들어 놨고、두번째 만지지 못하게 상당한 확보해 놓으니까 애써 우산대로 쿡쿡 찔러서 구멍을 내 놨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만지는 습성의 원시적인 표현입니다. 우리 나라의 기생문화를 가늠해 볼 때도 만지는 것에 따라 구분됩니다.
「일패기생」(一牌技生)을 「 불가촉」(不可觸)이라 해서 절대로 만질 수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이패기생」(二牌)은 「가촉」(可觸)이라 해서 만져도 좋다고 했습니다.「삼패기생」(三牌)은 「가촉촉」(可觸觸)이라 해서 주물러 터뜨려도 좋다고 했습니다.
만지는 정도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한 민족은 오로지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 뿐입니다.
우린 타고 날때부터 사람을 만지고、물건을 만지는데는 명선수들입니다. 도통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따로 있습니다. 부부(夫婦)들은 도무지 만지지 않습니다.
그토록 철저하게 만지던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만지고 주물러 터뜨려야할 부부끼리는 만지길 두려워 합니다.
점잖치 못한 짓이란 것입니다.
체통을 중시하다 보니 그런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체통이란것을 꼭 그런 식으로 지켜야먄 옳으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되겠습니다.
최근 당신의 배우자를 언제 만져 보았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 솔직한 답변을 해보십시요.
결코 쉬운 대답은 아닙니다. 갑자기 쑥스럽고 어색해 집니다. 만진다는 것은 깊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 이상의 훨씬 높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손이란 신통할 정도로 수많은 언어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진다는 것은 대화 그 자체입니다.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완전한 신호입니다. 내 마음은 당신을 향해 아낌없이 활짝 열려 있으니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충만토록 해주십시요 라는 사랑의 밀어이자、선언입니다.단순히 피부가 와 닿는것이 아니라 마음이、 심장이 와 닿는 것입니다.
화초를 가꾸거나、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십시요.
그분들은 부지런히 만져구고 말을 합니다. 화초도 말을 알아 듣고 촉감을 느낀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과학적으로 판명이 난 사실입니다. 하물며 사람이야、하물여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야 만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만지다는 것은 대화、그 자체라고 했습니다.이번엔 이렇게 말씀 드리기로 하겠습니다.만진다는 것은 대화、그자체보담 휠씬 높은 경지에 있습니다.
만지는 것은 부부의 이상(理想)입니다.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가장 적절한 도구로써 손을 주신것입니다.(요한 13장 34절~35절)
지극히 단순하고、사소하고、일상적인 이에 우리 부부님들은 의외로 게을러지고 쉽게 나약함을 드러 내고、어울리지않는 거드름을 피우십니다.
부부가 서로 만지려는 열정을 달갑잖게 평가 해버리신다는 말입니다. 더우기 남편되시는 분들에겐 대단히 큰 약점으로 통할수도 있습니다. 점잖지 못하고、 손버릇 나쁘고、 나약하고、좁쌀스럽고…….
남편이 아내를 만지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자연스럽고、바람직스럽지만 상당한 용기와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비난과 씁쓸한 야유를 각오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명명백백합니다. 용기 있는 남편만이、참사랑의 뜻을 이해하는 아내만이 서로가 서로를 만질수가 있습니다.
하루에 우리 부부는 몇번을 만졌느냐에 따라 사랑의 척도로 삼는다면 그것이 잘못일까요? 용기를 냅시다.
우린 잘 만질 수가 있습니다. 바탕이 그렇습니다.또 더욱 큰 위안이 되는것은 나는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히 이 보담 더 기쁜일이 또 있을런지…….
한사코 손을 잡아주고 혹은 쓸어주고、또는 토닥거려주고、더러는 으스러지게 안아주기도 하고 …….
남편이 아내에게、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것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하느님은 바라지 않습니다. 참 멋진 양반입니다.
알렐루야.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