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여름, 나는 일요일밖에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을 위해 개설된 성인교리반의 교리를 맡았다. 무더운 지하교리실에서 실시됐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교리에 참석하는 예비자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고마웠다.
단 하루라도 덥고 습기찬 교리실을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하고 성지순례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때의 교과과정이 한국천주교회사였으므로 행선지도 신앙을 증거하다 수많은 순교자를 낸 「해미」로 정했다.
일행과 함께 성지에 도착하여 순교탑에 참배. 기도한 후, 고문의 현장인 영남루 호야나무 밑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우리 일행은 도시락과 여러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식사전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보는 그림자가 내 눈앞을 비치고 있었다.
허름한 차림의 한 노인이 서 있었던 것이다. 달갑지 않는 불청객(?)이었다. 나는 그 노인과 시선이 마주쳤고 도시락 하나를 건내주었다.
그러나 노인은 도시락을 거절하고 그 자리에 선채로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해보았다. 그 노인은 기다렸다는듯이 함께 자리해 식사를 했다.
그때 내머리에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십자가 상에서『목마르다』(요한19, 28)하신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나눔의 잔치에 초대되고, 당신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봉헌하신 그리스도는 미사를 통하여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의 먹이가 되시고 우리는 사랑의 고리로 단단히 맺어진다.
이 단순한 사랑의 진리를 우리는 실생활에서 적용하기를 주저한다. 『가장 미소한 이에게 베푼 것이 바로 내게한것이다』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적 생활권고를 생활안에 받아들여 이웃안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세상은 얼마나 밝아질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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