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것 좀 보세요. 이상해요』하얀 불꽃처럼 뜨겁게 타던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어, 강가의 시원한 바람이 스며드는 해거름에 베란다에서 딸 아이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때 마다 물을 잘 주고있는데 왜 누렇게 죽어가는지 모르겟어요. 』며칠전, 교실에서 기르던 강낭콩을 방학동안 잘보살펴줘야 된다면서 집으로 가져왔다. 땀흘리며 소중히 들고 온 화분에 가느다란 줄기에 비해 실하게 생긴 강낭콩 꼬투리가 여럿 달려 있었다.
난ㆍ꽃ㆍ나무들이 살고있는 베란다에 강낭콩 화분을 들여놓았고 딸 아이는 공들여 콩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막내 콘꼬투리가 채 여물기도 전에 콩잎이 누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좋아요. 엄마, 잘 보살펴 주기로 선생님이랑 약속했는데요. 』
울상이 된 딸 아이의 천진스런 모습을 보며 『걱정 안해도 돼. 좀 이르긴 하지만 거둘 때가 된거야. 이것봐 이쪽 콩들은 다 여물었잖니? 선생님께서도 다 아실거야. 우리 콩을 거두고 화분에 다른 식물을 심어보자. 』그래도 될지 모르겠다는듯 딸아이는 아직도 근심스런 얼굴이다.
학기 초 반장 선거를 치른뒤 딸 아이의 청바지 무릎은 왁스로 늘 하얗게 돼서 돌아오곤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교실을 만들겠노라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이 되었으니까 약속대로 열심히 청소를 하는거란다.
힘들다는 불평은커녕 내 눈길이 멎어있는 제 무릎을 손으로 감싸주며 『엄마 제가 빨래 도와드릴까요?』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래, 이세상 모든 사람들이 네마음만 닮아간다면 천국은 저 높고 먼 하늘끝에 머물지는 않겠지? 영세때 다짐했던 스스로와의 약속이 좀더 잘 이행된다면 불어나는 신자수에 비례하여 악덕과 범죄는 줄어들테고 흔배성사때 간직했던 그 설레임과 언약들이 잘지켜져 영글어 간다면 가정의 평화는 따로 구하지 않아도 하느님의 선물로 다가 올텐데 말이야.
오래 전부터 약속을 좋아(?)하신 분이 계셨단다. 거친 광야의 외로움 저편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고 계명을 주시며 지키는 자에겐 넉넉한 행복을 주시마고 하셨지.
고통과 죽음을 묵묵히 이기신 그분은 다시 오신다는 약속도 해놓으셨단다.
그분이 약속하신 소망의 나라는 보이지않는 작은 사랑의 실천과, 고통을 나누는 아름다운 손길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마다하고 힘없고 눌린자들을 위해살아가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 지겠지.
나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이 남발하고 있는 갖가지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무책임한 약속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추기위해 난 딸 아이의 작은 어깨를 꼬옥 껴안아 주었다.
책임을 다 하려고 애쓰고 제손으로 기르다 죽어버린 노란병아리의 무덤을 만들어 주며 시장 어귀의 다리잘린 상인을 위해 기도를 잊지않는 내 딸 아이의 착한 가슴속에 콩당 콩당작은 천국은 아름답게 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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