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시절、검은 수단에 흰 로만 칼러를 한 본당 신부님의 모습이 내심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사제가 되고 난 뒤、겉으로만 봐왔던 사제의 삶이 실상과는 얼마나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것인지 절실히 느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가 얼마 전에 보낸 사순절 판공성사의 경험이었다. 합동으로 사순절 판공성사를 주는 날、성당에 들어서자 다른 날과는 달리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고백자의 행렬에 기가 죽었고『과연 언제 이 고백이 끝이 날려는지』하는 생각에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늠름한(?) 모습으로 고백소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 정신이 몽롱해 지는 듯 했고 가슴이 답답해오기 시작했다. 물론 합동고백 시작 전에 선배신부님이 충고하시길 『이 신부! 무리하지 말고 한두시간 지나면 잠시 나와서 휴식 좀 취하고 다시 들어오게』하셨지만、그래도 제일 젊은 풋내기 신부가 그 정도도 못참고 나왔느냐는、선배신부님들의 눈치도 있겠고、또 오랫동안 기다리고 서있는 고백자들 보기가 부끄러워 고백소의 그 좁은 문을 열지 못하고、전전 긍긍하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속으로 「또 있구나」하는 낭패감에 빠지려는 찰나 『신부님! 이제 끝났습니다』라는 수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기뻤던지 『감사합니다』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요즘도 판공 때는 『신부님! 이제 끝났습니다』라는 그 목소리를 기다리는 기쁨으로 보낸다.
한편、고백성사를 주는 것이 힘든 것이기도 하지만、그 성사의 만남을 통해 사제의 삶에 얼마나 큰 위로를 얻는지 모른다. 인간적으로 봐선 아직도 이렇게 젊은 사제에게、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른 이에게 말하기 부끄럽고 힘든 내용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런 모습을 접할 때 참으로 그 성사의 현장에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하느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인가? 인간적인 차원만으론 설명이 힘든 일이다. 그러기에 고백성사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깊게하고 우리 삶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임에 틀림없다.
이젠 사순절을 마치고 참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축하하는 부활절이다. 이번 부활 대축일미사를 마치고 교우분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에 할머니 한분이 내 손을 덥석 잡으시곤 『신부님! 몸살 않나셨습니까?』라고 물으신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말엔 이미 본당 신부가 교우들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수고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다른 축하의 말 한마디보다 할머니의 그 한마디가 더욱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제도 인간(?)인지라 어줍잖은 「보상심리」가 발동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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