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자매님이 찾아 와서는 『신부님, 신앙이 흔들려요』하면서 자신의 믿음에 갈등이 있음을 호소해 왔다.
『어떻게 흔들립니까? 앞뒤로 흔들립니까, 좌우로 흔들립니까?』
나는 농담으로 가볍게 그녀를 몰아세우긴 했지만 그러나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성령의 은혜에 대해 함께 대화를 할수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흔들린다」는 표현을 한다. 신앙이 흔들리고 사업이 흔들리며 애정이 흔들린다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수도자나 신학생들 세계에서도 「성소가 흔들린다」는 말을 사용할 때도 있다.
「흘들린다」는 것은 어떤 위기가 닥쳐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혼란스런 상태를 말하지만 그러나 보다 넓은 신앙의 의미에서 바라보면, 어떤 종류의 흔들림이건 그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은총이 일하고 있다는 또다른 징표인 것이다.
성령이 무엇인가?
성서에서「성령」이라는 말의 의미는 본래「바람」이라는 것인데,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때는 바람이 부는 것이며 바람이 불면 또 흔들린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물론 지나친 비약이라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흔들릴 때 새로운 축복을 맞이할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배가 바람을 만나면 흔들리게 된다. 좀 심하면 바다에 빠질 위험도 있게 된다. 그러나 배가 바람의 방향을 잘 잡아 이용하기만 하면 배는 훨씬 더 빨리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이 분다고 무작정 허둥대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며 스스로 파멸의 길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일이 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어떤 재난이나 사고가 닥칠 때 우리는 새로운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을 가지고 용기있게 대처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늘그막에 태풍같은 바람에 휘날려 정든 고향을 버려야 했으며 백살에 얻은 아들 하나마저 불로 태워 제사를 지내야 하는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때마다 배의 방향을 하느님의 뜻에 맞춰어 조절했기 때문에 신앙의 위대한 선조가 될 수 있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풍파가 아주 심했던 인생이었다. 형들에게 살해당할 위기를 맞았던 그는 에집트에 팔려가서 온갖 박해와 고난을 겪게 된다. 그의 젊은 생애는 길로 사나운 역풍만이 계속되었으나 요셉도 언제나 배의 방향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었기 때문에 사나운 폭풍을 힘입어 오히려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태풍이 온다는 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지만 그러나 그 사나운 바람 속에는 항시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한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에게 필요없는 바람을 허락하시지는 않는 것이다.
언젠가 들은 얘기지만, 일본은 매년 태풍으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보고있지만 그러나 태풍이 오지 않을때는 그 피해가 오히려 더 크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을 흔히 바다를 항해하는 배로 비유한곤 한다. 바다는 물론 세상을 말한다. 순풍에 돛달고 항해할 때는 기쁘고 신이 나지만 역풍을 만나 고생할 때는 아주 힘들게 된다. 그러나 모든 바람 속에는 하느님의 은혜가 놀랍게 숨겨져 있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두 분의 대학 총장님은 실로 사나운 폭풍의 회오리에 휘말려서 한때 고생을 많이 하셨던 분들이다. 한 분은 광주항쟁때 투옥되어 해직당하시어 오랜 고생을 하셨고 다른 한 분은 법조인으로서 민주화의 선봉에 섰다가 역시 투옥되어 자신의 직무마저 박탈 당했던 분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배의 방향을 주님의 뜻에 맞추어 용기있게 대처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바람이 은총을 몰고 온 것이었다.
따라서 바람이 분다고 덮어놓고 허둥대고 당황하며 실망해서는 안된다. 특히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여 배의 방향을 거꾸로 잡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믿지 않는 이들이나 아주 어리석은 신앙인들이나 하는 일이다.
센 바람은 누구나 두려워하게 된다. 태풍이나 폭풍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배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바람이 분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가까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바로 그 바람 때문에 급성장하게 되며 낡은 껍질을 벗게 되고 새로운 세계로 비약하게 된다.
엊그제 모 도시에 갔다가 고해성사를 몇시간 준 일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더 많이 배우신 분들이 위기에 부딪쳤을 때 하느님을 버리고 점쟁이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놀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시련이 오면 이내 「신앙이 흔들린다」는 말을 아주 무책임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바람이 아니고는 연이 하늘에 오르지 못하듯이 시련과 위기가 아니라면 우리도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없는것이다. 은총은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뤄야만 한다. 예수님도 그랬고 성모님도 그랬다. 따라서 우리는 바람을 기다릴줄 알고 그 바람을 잡을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축복의 길인 것이다.
『바람아, 불고 싶은대로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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