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간다.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 간다. 올해의 진달래는 유난히도 붉더니만 정치얘기 증권얘기 싸움얘기만 남기고 어느새 사월이 간다. 부활절의 따스한 햇살과 만물이 약동하는 아름다운 계절이 사람들 마음속에 불안과 미움과 거짓말을 남기고 간다.
이래서 될 일인가.
가라지는 밭에 나는 강아지 풀이다. 말하자면 잡초다. 씨뿌리는 사람이 그것을 심을리 없는데 왜 그러냐고 제자들이 물었을때 예수님은 원수가 몰래 뿌린다고 했다. (마태13、28)
그래도 밭에는 가라지 보다 본래의 농작물이 많은 법이다. 그래야 그것이 밭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가라지가 더 많고 더 극성이고 더 화제에 오르내린다. 이래서 될일인가、
가라지가 판을 치면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만큼 세상은 불안해진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 많은 불안은 바로 거짓 말 때문이다.정치하는 사람、사업하는 사람、심지어는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까지 너무 쉽게 거짓말을 한다. 그러니 어느 세월에 가라지가 없어지고 불안이 사라질수 있겠는가.
인간이 불안해지면 본능쪽으로 기운다고 했다.본능에 탐닉함으로서 불안을 잊어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 그런지 갈수록 먹고 마시는 업소가 많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오죽했으면 12시 까지만 술을 마시도록 정부가 규제조항을 만들었겠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부끄러운 것이다. 공적 제재를 가해야만 우리사회가 술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러한 규제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정직성을 되찾고 그만큼 불안의 요소를 멀리한다면 미친듯 술 먹는 사람들도 줄어 들것으로 본다.
한편 가라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짜가 많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니 우리사회는 의심이 떠나지 않는다. 이 또한 불안의 요인이 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물질에만 가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도 가라지는 있다.
삶의 행복을 소유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 것이 첫번재 가라지다. 그리고 주변의 매스컴들은 이러한 속임수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소유가 진실이 될수는 없고 돈과 물질이 행복자체 일수는 없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그렇다고 판단하여 우울하게 살아간다. 가라지에 속고 있는데 그것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
가라지는 원수가 몰래 뿌린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깊어지면 인간관계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요즘 부부간에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유행처럼되어 있는데 좋은 현상만은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향해 아내가 남편을 향해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야 되는 것은 개화된 사고보다는 피곤한 일이다.
부부는 함께 사는 그 자체가 사랑이다. 그런데 그것을 확인하러 든다는 것은 의심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원래 사랑은 시작할 때와 끝날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신혼시절을 지나 한참 사랑의 성(城)안에서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때늦게 사랑의 확인을 찾는 것은 가라지에 속는 것 일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가라지 사랑이 많이 있다.해서는 안될 사랑、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깨어진 사랑、 등등… 그런데 TV에서는 이러한 사랑을 소재로 이야기 거리를 연일 제공하고 있다. 모르는 새 우리는 그러한 것이 사랑의 모습이라고 세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라지가 득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가라지는 교회안에서도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신자가 많아지고 성직자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가짜 신자도 많아 지고 가라지 성직자도 늘어난다는 말과 같다.
로마의 박해를 견디어 내던 초대교회가 정작 로마의 국교로 선포된 뒤부터 부패의 길도 함께 걷게 된 것은 출세를 지향하며 어중이 떠중이들이 교회안으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안에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근자에 오면서 우리 교회도 사회적 이미지가 쇄신되고 신자수의 급증으로 넉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겉 모습 뒤엔 그것을 떠바치고 있는 말없은 다수의 자기 봉헌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행위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분의 뜻을 따르다 보면 자기 희생이 요구된다. 성직자이든 신자이든 이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따라서 희생없이 신앙의 기쁨만을 추구하려 든다면 그것은 가라지 신앙에 속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볼때 교회를 민주주의로 보는 것도 올바른 시선이아니다. 교회안에서 우리가 찾는 것는 하느님의 뜻이지 인간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제도를 무리하게 바꾸려든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가라지가 될 우려가 있다.
이제 5월을 맞는다. 자연이 제 색깔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우리 곁의 가리지들을 제거함으로서 믿는 이의 밞음이 누리를 비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