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가장 오래전부터 등장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이다. 나무의 두가지 이미지를 살펴보자. 한 나무는 베어짐으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준다.
종이나 가구 등이 그렇다. 다른 한 나무는 굳건히 서 있음으로써 싱그러운 생명력을 발휘하고 그늘과 쉴 곳을 제공한다. 광합성 작용이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호흡을 하겠는가! 베어지는 나무와 베어지지 않는 나무는 삶에대한 중요한 각본을 제공한다. 이를 테면 주는것과 보류하는 것, 유와무(有瓦無), 하는 것(爲)과 하지않는 것(無爲), 소유와 전재가 바로 그것이다.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야기는 현대의 고전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절단되어 사용되면서 자신의 생명을 주는 나무의 이미지에 따르고 있다. 또다른 이야기는 노자가 말한 2천4백년 된 나무의 이미지로서 제목을 붙이자면「쓸모없는 나무」가 어울리겠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다. 노자의 나무 이야기와 놀랄 정도로 다른 점들을 제공한다. 한 사람과 한 그루 나무에 대한 이두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의 세계관과 동양의 세계관의 차이라고 할까? 근본에 도달하는 다른 두 가지 길이라고 할까?서양과 동양의 의식이 폭과 한계를 엿볼수 있다고 할까?자연에 대한 서양의 태도와 동양의 태도라고 할까?
이 두 이야기는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주면서 절단되는 것과 다른 한 편으로 떨어져 있으면서 거리를 두고 그냥 두는 것이다. 한쪽은 베어짐으로써 다른 한쪽은 있는 그대로 둠으로써 치유가 이루어진다.
우리들은 모든 것을 그냥 두지 않는다. 파고 뒤비고 엎고 개발하고 독점하고 가격을 매긴다 또 실용성과 이용 가능성을 따진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은 보지 않고 돈으로, 투기 대상으로써 먹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모든 실재를 대한다. 그러니까 자원이 낭비도고 일회용품이 마구쏟아지고 나무 젓가락과 종이도 마구 사용한다. 내 멋대로 내 기분내키는 대로 물과 땅을 나무를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파괴한다. 이것은 자연에대한 폭력이다.
있는 그대로 보자. 그냥 놔 두자. 나무를 심자. 우리에게 산소를 주지 않는가? 나무가 뽑히고 베이고 죽으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나무를 원료로 하는 제품들은 모두 재생하자. 특히 종이와 나무 젓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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