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뒤라 눅눅하게 습기찬 아침나절이다. 앞집 아주머니는 빨래를 널기 위해 베란다에 나와서 구불구불하게 구겨진 옷가지를 양손으로 잡고 털어가며 빨래줄에 걸치고 있다. 탁탁 빨래터는 소리에 구름들이 떠밀려가고 하늘이 벗겨졌다.
형제들 중에 식구가 가장 적은 언니집에 와 더부살이를 한지도 2년이 되었다.
독서와 산행, 부엌으로 소일하는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비가 와서 산행을 포기하고 마루에서 부엌에 몰두하고 있는데, 딸거락 딸거락 수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조카아이가 아침밥을 챙겨왔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국대접에 누룽지밥을 담아 김치와 오징어무침으로 간단하게 차린 것이다. 뜨거운 김을 훅훅 불어가며 먹다 눈이 마주친 조카는 『이모, 우리 오늘 방학해』라고 말한다. 나는 『넌 방학해서 좋겠다』고 했더니 조카는 대뜸 『이모도 방학이잖아. 그래서 매일 집에서 실컷 놀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남편과 헤어져 저희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나의 생활을 조카아이는 방학으로 비유했다.
처음, 남편과 헤어진 아픔을 달래기 위해 담배연기 불어대듯 고통을 날려버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사라진 담배연기를 쫓듯 허공을 향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손에 잡아야 했었다.
공장 작업장의 신기롭던 분위기, 옷가게 등으로 한해를 보내고 점차 다람쥐 쳇바퀴돌 듯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내게로 다가오셔서 당신을 따르며 살아가게 하셨다.
이제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조카아이의 말처럼 내 인생은 새로운 싹을 튀우는 숙제가 주어진 방학임을 깨달았다. 새로운 삶을 향하여 주님과 함께 나아가야 하는 사명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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