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남에게 몹씨 굴면 죽어서 축생도에 떨어져 소가 된단다」「밥 먹고 곧 벌렁 누워자면 소가 된단다」는 말들이 있다.
첫번째 말은 불교에서 중생을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제도하기 위해서 어진 행동을 하도록 다잡는 말이며, 뒤의 말은 먹고는 잠이나 자는 게으름뱅이를 경계하기 위한 말인 것이다. 소는 한 평생 묵묵히 우리 인간을 위해 봉사하고, 끝내는 제 몸마저 내어 주어 사람의 먹이가 되기까지 하는 짐승이다.
인간과는 가장 가까이 지냈건만 바로 그 인간에게 매몰스럽게 배반당하는 가여운 짐승인 것이다. 위에서 든 글들은 그러기에 그런 궂은 팔자를 가진 짐승으로 내세에 태어나지 않으려면 착하게 살아야하고 게으름피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인 것이다.
그런데 예전, 한 8세기경 당(唐)나라 선종(禪宗)의 스님 가운데 남전(南泉, 남천으로 읽진 않았다고 함)이란 스님이 계셨다.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제자 조주(趙州)가 『스님, 백년 후(돌아가신 뒤)에는 무엇이 되고 싶으십니까?』하고 묻자 『나는 저 들집의 소가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럼 저도 스승님을 따라 소가 되렵니다』
『그럼, 자네 꼴이나 한 입 더 물어다 내게 주게나.』
이 고귀한 사제간의 문답은 내 마음을 찡하게 사로잡는다. 그러면서 한편 『선생님, 부디 바른 길을 이제 우선은 그만좀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앞서 들은 말씀도 미처 실천치 못했사옵나이다』 하면서 괴로와했던 자로(子路) 심중을 적으나마 헤아리게 된다.
소가 되어 남에게 부림 받을 새라 저어하는 것이 우리 중생의 일반적인 생각인데, 소가 되어 중생을 위한 희생의 제물로 스스로를 기꺼이 바치겠다는 남전의 내세의 소원, 게다가 이 말을 듣고 이내 자기도 스승을 따라 소가 되겠다는 조주도 우리를 감동시키거니와 그럼 꼴이나 한입 더 물고 와서 내게 주게나 했다는 남전의 천연덕스러운 믿음.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이들의 대화가 비록 선종(禪宗)의 스님ㆍ사제간의 문답이라고는 하지만, 그 세계에서 조차 그리 흔한 대화는 아닌 상 싶다. 불제자의 길도 여러가지다. 고귀한 자비심으로 우리를 밝혀주는 스님이 계신가하면, 그 중에는 더러 높은 지위에 올라 국왕의 융숭한 예우를 받아가며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린 이도 있었을 것이다.
중생 위해 군림하느라 정작 중생의 고통일랑 아예 모를 수도 있었을 지 모른다.
남전이니 조주니 백장(百丈)이니 하는 중국 선종사(禪宗史)에서도 거의 자취를 더듬기 어려운 인간정신의 고귀한 불씨를 13세기 중엽 기록으로 남긴 일연(一然) 스님과 까맣게 잊은 듯 묻혀버린 이들 스님의 자취를 간헐천(間歇泉)같이 우리에게 다시 전해준 2백여년 뒤의 청한자(淸寒子) 김시습, 그리고 5백여년 다시 까마득 잊은 듯 하던 이분들의 믿음의 자취를 오늘날 조심스레, 그러나 불타는 정열로 가닥을 추려 내고 계신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선생님을 생각해 본다.
언젠가 안동(安東) 어느 산골,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진고샅에 방언(方言) 조사를 갔을 때, 해는 저물고 앞길은 멀고 인가는 없는데 암자 하나가 눈에 띄더라는 것이다. 교수ㆍ학생 일행은 일곱이나 되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대식구를 맞은 스님은 『어서 오입시더』라며 반가이 맞더니만 있는 쌀을 몽땅 털어 잎나무를 살라 밥을 짓더라는 것이다.
『내사 없이믄 동냥 나가문 되니이더』 하더라는 것이다.
암자가 작으니 상좌고 불목하니(절에서 밥짓고 물긷는 일을 하는 사람)고 있을 리 없다. 큰 재가 들리도 없는 이 암자.
그러나 길손의 배고픔을 덜어주기 위해 자기에게 있는 전부를 기꺼이 털어 손수 밥지어 주더라는 이 이름없는 스님이 야기를 나는 오래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름이고 행적이고 전해질 지 조차 모를 그 스님의 고귀한 자비행각을 그나마 듣기라도 하고 가는 나는 행복하다고.
하기야 그 스님은 동냥은 나갔던 모양이지만, 남전과 같은 무렵 백장(百丈)이라는 스님은 하루 밭갈이 않으면 하루를 거른다(一日不耕 一日不食)는 말처럼 노동을 주장하여 스스로의 생활을 자급자족하였지, 동냥같은 것은 꿈꾸지도 않았던 것. 중생에게 개개지 않고, 오직 중생을 위해 스스로를 오롯이 바칠 뿐 자기를 위해서는 남이 시주를 빌지도 않았다는 끌끔한 스님도 있었다고 한다.
양(洋)의 동서를 가릴 것 없이 고귀한 인간정신은 못견디게 더러워진 세상을 한번씩은 갸온히 씨서리하고 지나는 모양이다.
온갖 부귀를 훌훌 벗어버리고 문둥이의 상처를 손수 씻어 주고 그 상처를 자기의 비단옷자락을 찢어 싸매어 주고 그 손에 입을 맞추고 그 몸에 자기의 옷을 벗어 덮어 주고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앓은 프란치스꼬 성인을 생각하게 된다.
자기의 사랑과 젊음과 명예며 지위를 다 후리쳐 버리고 고행의 길로 뛰어들어 맨꼴찌가 되고저 하는 성직자들을 생각케 된다. 이분들은 소가 될까봐 저어하는 우리들과는 딴 판으로 바로 소가 되련다는 선종의 스님과도 그 자기 희생의 정신세계가 꼭 같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아무리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하고 탁한 공기도 한오리 맑은 바람이 휙 스쳐 청신케 하듯이 이름모를 여러 성직자의 존재는 우리 가운데 같이 숨쉬며 아픔을 같이 나누며 안테나처럼 꽂혀 있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먼 곳에서 맑은 바람을 느끼게 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허허 넓은 사막의 샘물처럼 우리의 정신세계의 목마름을 추겨주는 분들에 대하여 어느 한밤을 하얗게 밝히며 나는 별 바다를 천창(天窓)을 통해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우러르며 두손 모으고 느껴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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